오래 기다렸다. 3월에나 파견 될거라 생각했는데, 아마 이번 달 2월에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변화를 앞두고 나는 아무래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작년 2월에 프리스비 경기 중에 발목 인대 부상을 당했는데, 벌써 올해 2월이 왔다. 발목 인대는 다 나았는데, 내 마음 속에 자라난 타성은 잘 낫지 않는다. 한국은, 음, 서울은 편하고 좋은 곳이다. 누가 뭐래도 삶의 편리성과 효율성은 매우 높은 도시이다. 물질적 기본 요소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아의 겉부분이 자꾸 팽창한다. 안정된 일상과 최소한의 책임만 지면 되는 생활은, 내가 이 편리한 도시에서 타성을 키우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이었다. 타성. 습관. 버릇. 인. 생활의 관성.
나는 지난 1년 내가 마치 주변인의 모습으로 서울의 테두리를 떠돌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이 곳에 살지만, 이 곳에서 밥벌이를 하지 않으며, 생산을 하지 않으며, 삶의 한 가운데에서 치열하지 못했다.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지만,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내 생각에 대해서만 치열했다. 지난 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부정의와 비합리성에 대해 분노하고 짜증내고 비판하고 불평했지만,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나는 비겁함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 선택에 대해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나는 어릴 적, 혹은 더 젊었을 때 모든 사람이 나처럼 불의나 정의롭지 못한 인간들에 대해 분노하고 피가 끓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름 나이를 좀 먹어보니, 인간의 기본 성향, 성격, 생각구조, 가치관, 세계관은 고유하다는 판단이 든다.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는 기준에 의한 판단이, 남과 다 같지는 않다는게 점점 확실해진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어떤 일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데, 분노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판단에 더불어, 분노가 행동으로, 행동이 변화로 승화되지 못 하는 현실에서 그냥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 해는 적어도 나의 일에서는 치열해지고 싶다. 큰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의 심정으로, 나는 파도가 날 휩쓸어가버리길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음은 참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렸는데, 이제 막 시작하려니 얼떨떨하다. Is this really hap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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