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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오후/영화, 매체

드라마 '미생' 마지막 회..

by 주말의늦잠 2015. 1. 29.




  드라마의 시작에 나는 공감했고, 그 중간에 나는 눈물흘렸고, 마지막엔 헛웃음이 나왔다.


  사회 초년생이 커다란 조직에 들어가서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고, 기본 '미생'이라는 작품을 토대로 가지고 가는 드라마였으므로 그 전개와 몰입도는 정말 뛰어났다. 종편이라 그런지 회가 거듭할 수록 심해지는 PPL도 그러려니 했다. 드라마 속에서 장그래 뿐만 아니라, 신입사원들, 대리들, 과장급, 부장급 그리고 상무급에 까지 이르는 그 조직 속의 군상을 자세히 그려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미생'을 보면서 생각한 그 수많은 이야깃거리들, 삶, 일, 조직, 생존, 육아, 견딤, 버팀,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작은 눈물과 작은 웃음들에 대하여.. 


  그 잔잔하고 중요한 이야깃거리들에 20회는 한 마디로 '초쳤다'. 큰 조직에서 나와 작은 조직을 이루어, 큰 조직의 '시스템' 없이 고군분투 하는 그 작은 팀의 모습까지는 좋다. 그런데 요르단 출장가서 사업 물품을 빼돌린 놈을 추격하면서, 차에 치여도 일어나 달려가고, 건물 사이를 막 뛰어넘는 장그래의 이 슈퍼맨 적인 면모 (물론 그의 스마트한 수트착용새와 머리스타일은 장그래가 꽤나 성장했음을 암시하는 도구이긴 하다), 휑한 사막에서 프루스트의 시를 읊조리며 창업 (혹은 새로운 사업)에 대한 포부를 이야기 하는 오차장의 탐험가 복장. 페트라 앞에 뜬금없이 켜진 로맨틱한 촛불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결국 19회까지의 그 잔잔함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 대신, 상투와 클리셰 범벅으로 막을 내린다.


  물론 미생 두번째 시즌이 제작된다고 한다. 그 시즌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20회가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겠다. 원작 '미생' 웹툰의 마지막은 그 작은 사무실로 들어서는 김대리가 문을 열며 그의 그림자를 포착한 컷으로 끝난다. 나는 그 결말이 훨씬 좋다.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결말. 그 김대리 역시 대기업 사퇴내고 이제야 구색 갖춘 작은 조직으로 오면서, 사람 믿고 왔을 것 아닌가. 그리고 그 결심은 (그에게는) 해피엔딩이겠으나 여전히 실패와 고난의 그림자는 어른댄다. 그 복잡다단한 심경과 '김대리'로 대변되는,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라마 '미생'에는 전혀 없었다.


  해피엔딩이긴 한데, 시즌 2를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긴 한데, 마지막 회가 드라마에 초친건 부인할 수 없다. 드라마로 이야기를 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싶다면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을 버리시길.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독백은 괜찮았다. '혼자가 아니다'


- 1월,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