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 저자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2010-10-27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백년의...
도미니카 공화국.
이 소설은 이름도 생소한 중미의 작은 섬 국가의 독재 정권 시절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독재는 우리에게 먼 역사는 아니다. 어쩌면 여전히 그 그림자 그늘에서 살고있는지도.
공화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트루히요'라는 철권 통치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그리고 독재자의 가족, 그 주위의 정치적 인물들, 정치적 희생양과 그들의 가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서술자의 시점이 바뀌는데, 그 시점 중 하나는 바로 트루히요 자신이다.
그리고 물론 독재정권의 몰락 후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를 찾아헤매는 우라니아도 주요한 나레이터다.
트루히요는 '칸트와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삶을 살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아주 빈틈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트루히요는 자주 '마호가니의 집 (고급 사창가로 짐작)'에 들리는데,
이 마호가니의 집에서 자신이 얼떨결에 당황하며 마주했던 한 어린 여자아이를 계속 떠올린다.
그리고 이 어린 창녀 여자아이와 더불어 트루히요의 왼팔로 활동했던 카브란의 딸이었던 우라니아의 어린시절이
흥미롭게 대조된다. 물론 1권에서 이 창녀 여자아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단지, 대쪽같은 성격과 빈틈없는 생활과 철권 통치로 대변되는 이 독재자의 마음 속에서
자꾸 되살아나는 당황스러운 기억으로 소설 속에서 여러 번 상기될 뿐이다.
상징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폭력, 강간, 피, 억압, 탄압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오면서
뭐랄까 정말 한 명의 독재자가 (그것도 산업화의 고국 건설의 근대화!라는 논리로 무장한) 국가와 시민을
그 악랄한 체제로 '강간'하는 모티프를 요사가 계속 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
그리고 나레이션의 또 다른 축은 아마디토, 살바도르, 안토니아, 임베르토를 주축으로 트루히요 암살을
계획하는 이들이다. 트루히요의 최측근들까지 가담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설은 어린 시절 트루히요가 무너지기 바로 전에 나라를 떠나 미국에서 공부해 지금은 성공한 여성이 된
우라니아가 즉흥적으로 도미니카 행을 택하면서 시작되는데, 역시 남미 소설이라 처음에 이름을 익히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이름을 다 익히고, 인물 구조도를 조금 그려가면서 3장정도까지 읽으면
사실 앉은 자리에서 금방 다 읽힌다. 그 만큼 흡입력이 있고, 나는 우라니아라는 인물에게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현실도 '독재'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뭐랄까. 독재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그 논리를 재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2권을 읽어야겠다.
본문 인용.
70p. [....] '대령은 악마일 수도 있어. 하지만 수령님에게는 유용한 존재야. 나쁜 일은 죄다 그가 뒤집어쓰고, 좋은 일은 모두 트루히요의 업적이 되거든. 그것보다 더 훌륭한 봉사가 무엇이겠어? 정권을 30년 이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조니 아베스 같은 사람이 필요해. 그런 사람의 몸과 머리가 필요한 법이야.
98p. 우리니아. 넌 이해할 수 없어. 비록 네가 그 시절의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지라도,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었겠지만, 읽고 듣고 조사하고 생각한 후에 너는 정부의 선전과 정보 부족으로 짓밟혔고, 교리와 고립으로 짐승처럼 되었으며, 공포와 비굴과 아부가 습관이 되어 자유의지나 심지어 호기심마저 상실한 나머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트루히요를 우상화했다는 걸 알게되었지. 그건 그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어. 아이가 권위적인 부모를 사랑하면서 채찍질과 구타가 결국은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거라고 믿는 것처럼 말이야.
130p. 그는 기운이 빠지면서 사기가 저하되었다. 시계를 보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가랑이나 지퍼 부분에 얼룩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마호가니의 집'에서 만난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불쾌한 사건이었다. 그 아이가 쳐다볼 때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는 이유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이 아니다.
138p. [....] 제기랄! 어쨌거나 이곳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31년 동안 이 나라를 폭력으로 더럽히며 망가뜨린 그 독재자만 사라진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그 시기는 아이티가 점령했을 때나 스페인과 미국이 침략했을 때, 그리고 당파들과 권위적 지배 계층이 내전과 싸움을 벌일 때 보다 더 폭력적이고 가공스러웠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부터 도미니카인들을 맹렬하게 습격했던 지진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보다도 이 나라를 더 망가뜨리고 더렵혔다.
251p. [....] 부자드 역시 계속해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수령과 한패가 되어야만 했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회사들의 일부를 그에게 팔아야 했으며, 수령의 회사들 일부를 사들여야 했다. 이런 식으로 부자들도 트루히요의 위대함과 권력에 공헌해야 했다. 그는 살며시 눈을 감고서 조용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트루히요가 만들 수 있었던 체제, 도미니카 사람드이 조금 빠르거나 늦은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공모자로 참여했던 체제가 얼마나 사악한지 생각했다.
[...] 염소는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여한 성스러운 속성, 즉 자유의지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325p. 얼마 전부터 그는 자기가 그런 유혹에 굴복한 것이 모두 트루히요 탓이라고 돌렸다. 도미니카 남자들이 매춘부들이나 떠들썩한 술자리 혹은 다른 방탕한 삶을 찾는 것은 모두 야수의 잘못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빼앗긴 나라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트루히요는 악마의 가장 유능한 동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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