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단편 소설집이다. 총 8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박민규 스러운 개그 코드도 보이는 반면, 이야기를 풀어가거나 맺는 방식은 독창적인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독자인 나에게 물어보고, 제시하고, 질문하는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이건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메마르게 끝을 맺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황망해져버리는 결말들. 여기 실린 8개 이야기의 결말 말이다. 결말이면서도 사실 결말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툭 끊겨버리거나, 물음으로 끝나거나, 정확한 진위 여부를 제시하지 않고 인물의 생각이나 묘사로 끝낸다던가. 뭐 그렇게 말이다. 특히 '김박사는 누구인가?',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탄원의 문장' 이 세 단편을 읽고 나서는, 정말 이상하게 황망한 느낌이었다. 마음 속이 좀 텅 비어버린 것 같고, 가만히 누워 천장 벽만 보고싶은 그런 기분. 답이 나올 것도 같은데, 답이 나오지 않는. 정말 김 박사는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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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모든 사건을 겪어 이제는 옛날 이야기를 복기해주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C라는 사건을 겪기 전과 그 후,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복기하는 목소리가 섞여있어서 독자로서 읽는 데 서스펜스가 있다. 마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훅처럼, '그 때는 일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다'던가, 뭐 당시 '나는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등등.. 소설을 읽다가 다시 한 번 자세를 고쳐 앉아 더 면밀하게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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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앞에서 언급한 세 작품. 특히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에서는 윤리와 종교, 인간 심리의 가느라란 실들이 파르르 떨리며 드러나는 느낌이었고, 결말이 압권이었다. 정말. 그리고 '탄원의 문장'에서는 이 작가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나 문학과 사회 정의 (법)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찾아보니 '최순덕 성령 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라는 소설집도 있고, 최근에는 '차남들의 세계사'란 소설도 나왔다. 가끔 이런 이야기들이 필요할 때, 주저않고 집어들 것 같다.
발췌 인용.
[....] 담임목사는 그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선 채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마가복음' 8장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을 인용하며, 담임목사는 길게 기도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경의 눈에 침을 뱉어 이적을 행하는 부분이었다. 일전에 그는 담임목사와 함께 그 대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소역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던가 봐요?"
"왜요?"
담임목사가 물었다.
"눈을 뜬 다음 예수께서 무엇이 보이느냐 물었더니, 사람들이 나무처럼 걸어가는 것이 보이나이다, 하잖아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나무를 본 적 있던 사람이라는 거죠. 이런 비유는 그런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거잖아요."
-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제가 한 학기밖에 안 다녀서 잘은 모르지만... 행정이라는 게 항상 법 뒤에 오는거래요. 거기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법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게 행정의 운명이라구요. 한데 문학은 안 그렇잖아요? 진짜 문학은 항상 법 앞에 있는 거잖아요? 안 그런가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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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판결문 속 문장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만 채웠던 것일까? 형용사 하나 없이, 시간대별로 주어와 목적어와 술어로만 나열한 그 문장들은, 오로지 입증 가능한 사실들로만, [...] 무정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이 답답했고, 또 한편 불편했다. 내가 답답했던 이유는, 그 안에는 P가 그즈음 겪었던 실연과, [...] 치기와 분노와 우울의 기록들이 모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따. 그것들은 모두 입증 불가능한 세계이니까, 법의 이름 아래 고려되지 않고 모두 배제된 것들이었다. [...]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문장들과 똑같은 태도를 지난 몇 개월 동안 취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똑똑히, 정면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 탄원의 문장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작과 진실 사이엔 그리 큰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이란, 어쩌면 진실을 마주 보기 두려워서, 그게 무서워서 바라보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운명 역시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척 다른 이야기를 하는 마음들, 강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하는 짐작들. 나는 지금 그것을 하려고 하고 있다.
- 화라지송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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