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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by 주말의늦잠 2014. 8. 2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저자
줄리언 반스 지음
출판사
다산책방 | 2012-03-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1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 맨부커상 수상작! 영국 문학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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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4월 경에 읽고 8월에 한 번 더 읽었다.


경장편, 즉 영어로는 노벨라, 정도의 분량이다.


책 분량이 짧다는 지적에 줄리언 반스 자신은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마랬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대꾸했다 한다.


그리고 이는 정말 맞는 말이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속속들이 전개되는 우연과 반전의 놀라움 속에서

나는 처음 읽을 땐, 이 책을 굉장히 빨리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이미 모든 이야기를 다 알고 한 번 더 읽은 순간,

이 소설 속에 깊게 가로놓여진 심오한 주제가 더 와닿았고

소설 중간 구절구절마다 줄리언 반스가 작가로서 얼마나 치밀하게 복선을 심어놓았는지

밑줄을 긋고 생각을 정리한, 아주 강렬한 독서의 체험이었다.


특히 인간 개인사와 기억, 합리화의 문제를 넘어

인간 전반의 역사와 우연, 책임성,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해석의 영역까지..

철학적으로 치밀하게 깊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서스펜스도 노련하게 소설의 마지막 끝 장까지 밀고나가는 그 힘이 느껴졌다.

정말 대단한 소설이다.


두번째 읽을 때, 주인공들의 학창시절 역사수업에서 토론하고 나왔던

많은 주제와 문제의식, 그리고 농담처럼 웃어넘겼던 여러가지 상황들이

소설 마지막과 너무나 치밀하게 맞닿아서


마지막 커버를 덮는 그 순간, 

내 팔 양쪽에 소름이 엄청 돋아있었다. 그 소름이 가시질 않았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빋어지는 확신 [...]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사면하기 위해 역사의 전개를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죄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 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사슬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 하나하나는 모두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선생님?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역사시간에 에이드리언이 선생님에게 한 말이다.

실제로 소설은 큰 비극에 대한 책임소재, 우연과 필연, 혼돈의 역사에 대항한 진실의 추구로도 읽힌다.

마이크로 줌을 당겨서 한 개인을 바라본다면, 

그 개인의 가족사, 자라난 환경에서 발화된 어떤 특징들..

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요인들이 더 넓은 맥락과 우연적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

사건이 되고, 그런 사건이 쌓이고 쌓여 어떤 비극을 초래했을 때.

그 비극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그 인간의 본능.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공부하고, 해석하고, 논하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가 

'기억해 낸' 혹은 '쓴' 역사를 알아야 된다는 점.

사료와 증거와 증언 앞에서 우리는 얼만큼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까?


토니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그 진실을 알게 된다.

평생을 나름 중산층의 삶, 큰 탈 없이 살았다고 믿어온 그 별탈없는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 진실을 거듭되는 기억과 증거와 증인을 만나고서도

아주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종결점은 무엇인가, 거대한 혼란. 바로 그것이다.


역사 수업시간에 한 멍청한 학생이 헨리 8세의 치세에 대해 질문을 받자,

'혼란이 있었습니다' 라고 했고,

자세한 설명을 선생님이 요구하자 


'거대한 혼란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라 한다.


교실에서는 다들 웃음이 삐져나오는 것을 막기위해 킥킥대는 우스운 상황설정이지만,

마지막에 결국 진실을 알게 된 토니는 독백한다.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