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말이 많아지고 들어야 할 말이 말이 늘어날수록 커트 보네거트같은 작가가 그립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 연합군 폭격기들의 드레스덴 공습으로 135,000명이 죽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죽은 사람은 71,379명이다.
사망한 연합군 집계는 5,000,000 명이 넘는다.
-
이 소설은 커트 보네거트가 엽한군의 독일 드레스덴 폭격 당시 미군 포로가 되어
지하 고기 저장고에서 '우연이 원하여' 자다가 생존한.. 아주 작가스러운 경험을 하고 20년이 지나서야 쓴 소설이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후, 이름을 바꿔 '적과 흑'을 쓴 스탕달이 떠오르기도 한다.
전쟁을 겪는 다는 것은.. 나는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주 거대하고 엄청나게 잔인한 경험인 것 같다.
커트 보네거트는 '빌리'의 눈으로 시간여행을 하며, 또 외계인 SF요소를 섞어
시종일관 블랙 코미디를 잃지 않고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전쟁 자체의 무용성에 대한 노작가의 건실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숙연해진다.
실제로 커트 보네거트가 겪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에 삽입된 한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이 책의 부제인 '아이들의 십자군'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빌리가 전쟁 당시 전우를 찾아갔는데, 그의 아내인 메리가 이상하게도 쌀쌀맞고 적대감을 품은 느낌을 준다.
"당신들은 그때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뭐라고요?" 내가 물었다.
"전쟁 때 당신은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다고요. 이층에 있는 저 애들처럼!"
[...]
"난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었던 것처럼 쓸 거고, 영화화 되면 프랭크 시내트라나 존 웨인처럼 매력있고 전쟁을 좋아하고 지저분한 배우들이 당신 역을 맡겠죠. 그럼 전쟁이 아주 멋져 보일 거고, 그러면 우리는 훨씬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되겠죠.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는 이층의 저 애들 같은 어린애들이 싸우겠죠."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그토록 화나게 만든 건 전쟁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은 물론 그 누구의 아이들도 전쟁에서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부분적으로는 책과 영화에 의해 조장된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점점 버튼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버튼을 눌러 미사일을 발사하고, 버튼을 눌러 드론을 전장으로 내보낸다.
1명을 죽인 자는 살인자가 되지만, 60,000명을 죽인 자는 전쟁 영웅이 된다.
전쟁 RPG 게임이나 슈팅게임에서는 공격을 위해 자판을 누르면,
'-3000' 하는 식으로 적군이 소멸되거나, '으악'하는 소리와 함께 나자빠진다.
게임스러운 전쟁의 형식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의 십자군'은 더 무섭다.
이제는 편히 워싱턴에 앉아서 아프간이나 파키스탄의 적군 요충지에 드론 공격을 날린다.
공격 중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면 '슬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Collateral damage일 뿐'이다.
공격하는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공격하는 손에는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는 물질적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전쟁의 컨트롤 타워와 전장이 멀어지고, 그 사이를 기술 (드론, 전쟁로봇 등)이 메꾸는 현상은..
이제 미래의 인류가 전쟁을 해나가는 일반적인 방식이 될 것 같다.
-
나는 무심코 '평화'가 인류의 기본 세팅, 디폴트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인류에게 있어서는 대립과 투쟁, 전쟁이 디폴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3차 대전은 없었지만, 국지전, 테러전, 내전의 빈도와 심화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지만...
군수사업의 발전이나 그를 통한 경제발전의 논리, 힘의 논리, 세력의 논리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
그래서.. 이제는 돌아가신 노 작가가 쓴 이 소설에서 제1장에 나오는 두 단락이 처연하다.
부시의 중동 전쟁을 반대하며 반전 시위도 참여했다던 그의 결연한 옆모습이 겹쳐지면서..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늘 가르친다.
+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
'문학 속을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끌림 - 이병률 (0) | 2015.09.24 |
---|---|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0) | 2015.08.15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필립 로스 (2) | 2015.07.29 |
야만적인 앨리스씨 - 황정은 (0) | 2015.07.17 |
Essays In Love - Alain De Botton (0) | 201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