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님은 개발경제학계에서는 유명하시다.
경제개발/개발학계에서는 'Developmental state'이론으로 수없이 인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개발독재'라고 일컫는 듯.
원래 서울대 교수 임용 시험까지 갔었는데 사상 스펙트럼이 안 맞아서
결국 캠브릿지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 런던 있을 때는 LSE 계셨다.
장하준 교수님은 학자로서 유명한 대중 경제학서를 많이 내셨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그리고 가장 최근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자본주의의 23가지 진실'..등
나는 책 세개 다 공부할 때 읽었었는데, 역사적 데이터 고증을 통해
주류 경제학 혹은 주류 시장자본주의의 통념이나 전제, 프로파간다를 뒤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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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앞뒤로 달려있다.
세계화에 대한 신화와 진실, 자유무역, 외국투자, 민간 및 공기업, 아이디어 (특허), 재정건전성,
부패와 민주주의 및 민족성 이슈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모든 이슈와 주제를 꿰뚫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선전을 있는 그대로 믿지 말고, 과거 그들의 성장경험에서 교훈을 얻어라!
그 교훈이란 무엇인가.
유치산업 보호 (infant industry protection). 보호무역 (protectionism), 투자규제 (Foreign investment regulation),
공기업의 적절한 이용, 특허권의 제한, 재정건전성 보다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 추구, 등등.
유럽과 미국, 일본이 항상 성장할 당시에는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보호무역을 실시했으며,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고,
특허권은 거의 전무했으며, 굉장히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랬던 시기가 이름바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을 펼쳤을 때 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고,
이 사실은 개발도상국들에게도 적용된다.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IMF나 WB는 개발도상국에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것으로 그 성장 해법을 진단했다. Structural Adjustment.
주로 단기적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고, 시장경제에 장기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경제의 구조를 개편한다는 것인데
그 개편의 방식은 주로 민간화 (privatisation), 탈규제 (deregulation) 및 자유무역 (free trade)이다.
그런데 80, 90년대에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시행한 이 구조조정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deindustrialisation까지 경험했고, 경제성장은 커녕 -_-;; 걍 똥망.
그 이후로 IMF와 WB는 어떻게 노선을 바꿨을까?
자신들의 Free market package 즉 자유시장 패키지는 '옳다'. 거기에는 변함이 없다.
자유시장은 언제나 옳고, 자유무역은 언제나 더 큰 부를 창출하고, 정부는 최소한으로. 뭐 그렇다.
하지만 그 최상의 패키지가 실패한 이유는 각각 나라들의 문화 때문이다...
부패가 너무 심하니까, 돈을 번 것보다 더 많이 쓰니까, 문화가 어떠하니까,
그래서 요즘은 대놓고 구조조정이라고는 안 하고, 구조조정의 conditionalities는 그대로 두고,
그 뒤에 anti-corruption이나 governance, 혹은 capacity building 프로그램을 같이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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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러한 주류 이데올로기의 대척점에 서있다.
한 마디로 자기들은 자유시장과 가장 반대되는 방법으로 성장해놓고, 이제와서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것이다.
뭐 물론, 부자들이나 부자나라들이 status quo, 즉 현상유지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부자나라 클럽 OECD도 가입하고 최근에는 부자나라 중에서도 공여국 정예국들이 들어가는 DAC도 가입하고..
그래서 우리도 전 세계적인 추세에서 보면 자유시장파의 최극단에 서있는 셈이다.
그런데 웃긴게, 한국에서 실제로 경제정책 추진하는 거 보면 자유시장 경제정책이 아닐 때가 더 많은 듯.
예를 들어 자국 산업 보호, 시장보호, 대기업 세제 혜택 등등...
ㅋㅋㅋㅋㅋㅋㅋ뭐 이 세상에 순수하게 100% 자유시장경제정책'만' 하는 나라가 어디있겠나-_-;
다 좀 보호도 하고, 규제도 하면서, 자기 국익 차려야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문제제기는 이거다.
개발도상국들도 자기 국익,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의 '성장'과 '개발'을 위해 과거 부자나라들이 했던
다양한 정책 (보호무역주의, 자국 산업보호, 특허권 침해 등)을 도입하고 똑똑하게 사용해야 된다는 거다.
그걸 위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말은 듣지 말어라....들어도 흘려라. 이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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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랫만에 경제학 교양서 한 권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내가 전공으로 공부했고, 앞으로도 고민해야할 주제라서 이번에는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하준 교수님은 보통 역사경제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듯 한데,
그래서 그런지 경제학계에서는 '사회학도' 취급한다고 한다.
(참고로 경제학자한테 사회학자라고 부르는 건 욕이다 (학계에서). 아마 사회학자한테 경제학자라고 불러도 욕일 듯ㅋㅋ)
그런데 그의 주장은 굉장히 강력하고, 역사적인 데이터도 풍부하다. 증거없이 떠드는 거 아니다.
오히려 자유무역 신봉자들이여... 당신들의 데이터를 내놓아보시오, 말하고 싶을 정도다.
빠리부스 쎄떼리스 따위로 경제학 인간 실험상황 만든 경제이론 말고. 그러고 싶긴 한데, 그래도 주류경제학은 당분간 영원하리.
내가 정책학도로서 생각해야 할 점은, '자유시장이 항상 답은 아니다'라는 명제.
정말.. 항상 답은 아니다. 자유시장이 답인 상황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케냐. 케냐와 부자나라인 한국이 자유시장에서 경쟁하면
도대체 그 소국이 이길 수가 있겠는가? 못 이김. 당연함.
케냐는 그냥 자기 하던거 계속하라는 게 자유무역의 명령이니까.
케냐가 반도체 사업이나 뉴로 사이언스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하면 이 세상에 누가 돈을 빌려줄 것인가?
그런데 국가성장의 명령은 그리 하라고 한다.
자국이 잘하는 것, 그리고 미래에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산업과 인력을 키워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는 여전히 올리브 기름이나 짜고, 한국은 가발짜고, 미싱돌리고 있을 것 아닌가.
그리고 온전하게 자국의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 비자유시장적인 정책과 규제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데, 학계에서는 특출난 음모론 정도로 여겨지는지 별 반응이 없다.
반응 없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긴 하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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