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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스토너 - 존 윌리엄스

by 주말의늦잠 2015. 7. 13.



스토너

저자
존 윌리엄스 지음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 2015-01-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조용하고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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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기에 잊혀진 소설이 다시 되살아나다. 우연한 기회에 한 편집자에 의해 21세기에 부활한 이 소설은 놀랍게도 지난 세기의 소설 같지가 않다. 마치 현재 살아있는 존 윌리엄스라는 작가가 막 펴낸 신작같다. 이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실 스토너의 인물들은 뭐랄까, 고정된 시공간에 박제된 인간형들은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스토너의 그 구부린듯한 등과 어깨의 실루엣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너는 스토리 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단순하다. 단순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굉장히 정적인 소설이다. 그런데도.. 나는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거의 숨도 참고 읽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은 감응을 받았다. 왜 쥴리언 반스가 '50년 만에 이 소설이 부활한 이유를 독자 여러분이 직접 찾아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 성공한 것도 없이, 또 그렇게 큰 실패라 할 것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고독과 회의와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왜 이리도 내 마음에 조응했는지. 특히, 처음에 문학의 길을 걷기로 한 아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두 노부부의 심정이 잘 읽혀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또 중간의 두 악인 (로맥스 교수와 찰리 워커)과 고군분투 하는 장면에서는 내 심장이 벌떡벌떡 뛰면서 내가 대신 저들을 윽박지르고 무찔러 주고 싶었다. 이디스와는 내가 이혼서류를 준비해주고 싶었고, 불합리한 인간들이 승승장구하는 저 모습이 현실을 떠오르게 해서 불편했다. 문학이나 가상 현실에서만큼은 해피엔딩을 보고싶지만, 결국 해피엔딩에 따르는 통속성과 저열함이 싫어 해피엔딩을 기피하는 나 자신도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외압과 정치판 속에서 자신을 지켜갈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자신을 지키면서 받아낼 수 밖에 없는 불합리와 불편함과 부정의를 묵묵히 살아내는 이는 몇이나 될까. 사실 그런 이들이 많지는 않을까? 내가 본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의 공과를 만인에게 인정받은 영웅이 아니라, 조용히 무시당하지만 자신의 신조를 세우고 사라져간 조용하고 힘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런데 힘없는 영웅.. 운운하는 실제의 단어로 이야기를 설명하려니, 되게 통속적이고 힘 없이 변해버린다. 스토너는 그 이상의 것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이 있다. 문학, 문학을 평생동안 공부한다는 일에 대해, 전쟁과 삶에 대해, 우정에 대해, 책을 쓰는 일에 대해, 자신의 내부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죽음에 대해.. 


  이 소설에는 스토너의 삶 A부터 Z가 1페이지 부터 마지막 장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마치 스토너의 곁에서 평생 그를 지켜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담은 맨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첫 장을 읽어보게 된다. 첫 장에는 스토너 인생의 Abstract 몇 줄이 있다. 처음부터 스토너의 인생에 멋진 사건이나 행복한 결말 따위는 없을 거라고 장담하고 시작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래서 정말 여러번 읽고 싶은 소설이다. 침착하고 진중하고 조용하게 내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왔다.. 



p.145 [....] 첫 번째 저서에 대해 그는 조심스럽고 소박한 기대를 품고 있었으며, 그것이 적절한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그의 책에 대한 서평에서 어떤 사람은 '단조롭다'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충분한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책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것을 양손으로 들고 아무 장식이 없는 표지를 쓰다듬다가 책장을 펼쳤다. 섬세하고 활기찬 아이 같았다. 그는 책으로 완성된 자신의 원고를 다시 읽고 나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그 책을 보는 일에 진력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그 책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경이가 느껴졌으며, 자신이 그토록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일에 무모하게 나섰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토너의 모습이 실제 작가 존 윌리엄스와 겹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윗 문장도 마치 존 윌리엄스가 쓴 것 같다. 존 윌리엄스도 미주리 대학에서 30년간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젊은 시절에 미국 공군 소속으로 복무한 경험도 있다. 그가 죽고 그와 그의 책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리고 스토너를 발간하고 50년 후에야, 사후 20년 후에야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역시나 이 소설은 떠들썩하고 많은 이들이 승승장구한 20세기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왜 이 소설이 인기가 있을까? 특히 유럽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이유를 이 이야기가 통속적으로는 '실패'한 이야기라서라고 유추해 보았다. 실패하는 이야기, 빛을 보지 못하는 이야기, 어둡고 침잠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들려주는 한 인간의 삶. 문학에는 우리 마음 속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 실패한 삶에서 보는 경이랄까. 결국은 모두가 실패자는 아닐까..?하는 조심스러운 생각. 실패가 주는 심연이 너무 깊어, 성공이 얕게 느껴지는 이물감. 억지로 긍정과 성공의 메시지로 이끌지 않는 문학의 진중함과 섬세함. 삶의 결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그 틈새... 이 소설에는 이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녹아들어있다.



- 7월,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