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많이 알려진 작가들이 덜 읽힌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누구나 카프카는 들어봤겠지만, 그의 작품을 완독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 중에서 말이다. 나는 카프카의 작품은 그 유명한 '변신'만 읽어봤는데, 리디북스에서 deal로 구입한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전집에 카프카 작품이 많이 보여 이번 기회에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미완성이다. (심판도 마찬가지로 미완성. 책의 마지막에 '미완성인 장(章)들'이 첨부되어 있다) 카프카는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미완성 작품을 포함한 모든 서류를 불태울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하는데..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그 유언에 반해 모든 작품을 출판한다. 문학사에 유명한 장면이다.
심판의 원제는 Der Prozess이고 영어로는 The Trial이다. 한국어로는 '재판'일 것 같지만 '심판'으로 번역되었다. 내 생각에는 재판보다는 심판이 카프카의 세계에 부합하는 제목이라 느꼈다. 심판을 읽으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엄연한 법치국가에 살고 있는 은행원 K(요제프)가 소송의 덫에 걸려 분투하는 모습이 목을 꽉 조여오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소송을 당한 K. 그리고 도대체 누가 소송을 걸었는지, 어떤 문제로 소송을 걸었는지 그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는 영원할 것만 같은 거대한 관료제의 늪에 서서히 잠식당한다. 처음에 그는 황당해하고 어이없다고 느끼지만, 일면 자신만만해한다.
p. 15 도대체 뭐하는 자들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어느 기관에서 나왔을까? K는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으며, 온 나라에 평화가 깃들어 있고, 모든 법률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감히 누가 함부로 그의 집에 들어와 그를 덮친단 말인가.
p.128. 여러분, 이 커다란 조직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그들에 대해서 무의미하고, 제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개는 아무 소용도 없는 소송 절차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으니 관리들이 극도로 부패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K가 살고있는 이 세계에서 '고발'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사회적 지위뿐 아니라 내면을 파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회 운영 기제로 보인다. K가 첫번째 심리에서 감시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언급한 것으로 인해 감시인들은 태형을 당한다. 고발하려고 하지 않았어도, 어떤 행동이 '감지' 혹은 '감시'되면 그 행동에 대한 고발로 처리되는 것 같다. 만인이 만인에게 고발을 가하는 사회란 자유가 극도로 축소된 상태일 것이 분명하다. 그가 소송을 당했다는 소식은 어느새 자신의 주위와, 자신이 모르는 이들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소문이 퍼져있고, 모두가 아는 사실을 그 당사자만 모르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만큼 모두가 밀접하게 귓속말을 하면서도, 서로를 감시하는 공간.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벽에 달린 귀와 문에 달린 눈을 조심해야 하는 그런 공간. 새삼 Freedom of expression이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요제프는 자신의 변호사를 만나고, 소송에 관계된 인물들, 그리고 피고인들을 만나며 소송으로 인해 인생을 한없이 허비하고, 마모시키는 인간형들을 만나게된다. 마치 영원히 지속되는 짐처럼 소송은 그의 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법정의 소송과정에 대해 하급관리들은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모르고 있고, 단지 관료적인 절차, 무료하고 진부하고 끝없이 인간을 마모시키는 관료제의 극단을 달려갈 뿐이다. 그러므로 요제프가 첫 번째 심리에서 관료제의 폐부를 찔러버리는 발언을 한 것은 결국 그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알리는 경종인 것 같기도 하다.
p.326 [....] 피고인들은 거의 누구나, 아주 단순한 사람까지도 소송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곧 개선책을 생각하기 시작해서, 다른 데다 쓰면 훨씬 유익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기 일쑤다. 단 하나 올바른 태도는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다. 사소한 몇 가지를 개선할 수 있다 해도 - 그것은 어리석은 미신인데 - 기껏해야 나중에 다른 사건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그로 인해 당사자는 항상 복수를 하려고 노리고 있는 관리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된다.
[....] 그저 주의를 끌지 않는게 상책이다.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아도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 거대한 사법 조직은 말하자면 영원히 판가름 나지 않으며, 거기에서 독자적으로 무엇인가 변화시켜보려다가는 발붙일 곳을 잃고 자신이 추락하게 된다.
특히 그가 소송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방문하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다. 사람을 거의 실신하게 만드는 법정 사무실의 텁텁한 공기와 질식할 듯한 분위기에 반해, 그 사무실에 일하는 이들은 바깥의 상쾌한 공기에 현기증을 느낀다. 철저한 관료제의 전횡과 그 공기 속에 사는 공무원들, 사원들. 거대한 괴물 속에 사는 이들은 자신이 괴물 속에 사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 또 처연해진다. 우리가 '소설'이라고만 웃어 넘길수 없이, 그 자체로의 현실을 서슬 푸르게 직시하게 한다.
-
요제프에게 걸린 이 소송 문제는 어느 순간 인간이 처한 어떤 조건을 일컫는 것처럼 확대되기도 한다. 카프카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주제로 글을 쓰기 좋아했다. 소송이 걸렸으니 요제프는 이 소송을 피할 수 없다. 소송에 맞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피할 수도 없지만, 변화시킬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그저 헤쳐나갈 뿐이다. 나는 이 세상에 선택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종교관/세계관을 갖느냐에 따라 이에 대한 논의는 달라진다). 나는 이 세상에 그저 나왔으며, 나의 삶은 내가 살아내야 할 '무엇'이다. 이런 인간의 보편적인 조건을 소설에서 파헤치고 있다는 점이 카프카가 좋은 작가임을 보여준다. 내가 읽어본 소설 중 묵직한 펀치를 날리는 작품들은, 분명 개별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속에 다양한 삶의 모습, 보편성, 일반적인 가치가 행간에 녹아들어있다.
p.501 피고들은 바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오. 죄가 그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니오. 왜냐하면 - 나는 적어도 변호사로서 이렇게 말합니다만 - 모든 피고가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또 마땅한 처벌을 받는다는 점이 그들을 미리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아니오. 피고 모두가 반드시 처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피고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떻든 그들에게 붙어다니는 이미 제기된 소송 과정이라는 것에 있을 거요.
-
결국 사형을 당하는 요제프. 마지막 종말 章에서 놀랍게도 그는 깔끔하게 준비된 모습이다. 미완의 작품이라 그런지 대성당 장면에서 바로 종말 章으로 넘어가서 '내가 뭘 놓쳤나..?'하고 놀라게 된다. 나는 전혀 결말을 예상하지 않았는데, 소설이 미완이라 갑자기 소설 중간에 결말이 내려진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카프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가 구축한 세계의 비현실성, 몽상과 현상을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 차갑지만 미묘하게 동화와도 같은 공기 속에서... 그 조차도 '심판'이 맞은 온당한 결말이라고 느껴졌다. 그의 소설 역시 창작자가 불태우길 원했으나, 결국 세상에 나와버린 것이다. 그의 소설도 그런 '조건'에 처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 왜 카프카는 자기 손으로 자신의 서류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자기가 나은 아이를 죽이는 것처럼 힘든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로서 미완의 작품, 습작, 메모와 같은 사적이고 내면적인 텍스트가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일 것도 같다. 그래서 그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다의적인 것이 매력인 것 같다. 그만큼 상징적이고 일면 동화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 카프카를 연구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것도 이를 방증한다.
'문학 속을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 나쓰메 소세키 (0) | 2016.02.14 |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0) | 2016.02.04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2) | 2016.01.19 |
페스트 - 알베르 카뮈 (0) | 2016.01.17 |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4) | 2015.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