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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by 주말의늦잠 2016. 1. 19.





  정신병, 질환, 마비, 결손, ~증 등의 단어를 들으면 흔히 우리는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다. '정상'이라는 범주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과 그 범주를 벗어난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 현대의학은 그들을 환자로 규정해왔고, 우리 역시 뭔가가 모자라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사람들, 부족하고 같이 살기엔 어려움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없기도 하고, 평소에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지만 이런 병리학적인 접근은 접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올리버 색스의 시각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정말 뇌와 신경 쪽의 부분적인 이상으로 부인을 모자로 착각하거나, 얼굴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하거나, 혹은 자신의 한 부분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말하자면 완벽한 인지 오류가 가능하다는 것도 놀라웠다. 24개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중첩되는 부분들도 약간 있지만) 다 개별적으로 소설 소재로 쓰일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라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이 책에는 총 24개의 단편적인 사례들이 실려있다. 올리버 색스가 신경과 전문의로서 직접 치료하거나 만났던 사람들, 혹은 직간접적으로 마주했던 흥미로운 케이스들을 모아놓았다. 올리버 색스는 마음이 따뜻한 의사이다. 그리고 '인문학적인' 의사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전문용어와 진단술로 가득한 병리학적 설명은 사실 이 책에서 부차적인 것이다. 다양한 문학과 신화의 구절과 철학자들을 인용하는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은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 책의 논조는 사실 이 24개의 사례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마치 단편 문학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는 흔히 '환자', '정신병자'로 쉽게 분류되는 이 추상화된 집단 속 한 개인 개인들 대신 목소리를 내어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그의 감정이나 생각 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엿보인다. 


p.214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필요하다면 되살려서라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즉 지금까지의 이야기인 내면의 드라마를 재수집해야한다. 우리의 정체성,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 편의 이야기 즉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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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요즘 계속 읽는 책들마다 '추상 vs. 구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에서도 저자의 주요 논점으로 다루어진다. '마음의 질'을 이야기하면서, 올리버 색스는 '저능아들의 세계'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세계보다 더 구체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추상적이고 범주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깎일 이유는 전혀 없으며, 사실 더 중요한 세계를 더 깊숙히 탐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반쪽자리 인간으로 폄하하는 소위 '반푼이'들. 그들의 세계는 우리와 다를 뿐이고, 사실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을지 모른다.


p.323 그러면 과연 저능아들에게 특징적인 마음의 질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천진난만함과 투명함, 완전함, 존엄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구체성'이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있고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통해 복잡해진 것도 희박해진 것도, 통일된 것도 없다.[....] 구체성이야말로 기본이다. 현실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으로, 개인적이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체성'이다. 만일 '구체성'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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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고 살짝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던 부분은 마지막, 4부이다. 올리버 색스는 결론 장을 넣는 대신 이 4부에 자신이 하고싶은 결론적인 이야기를 넣어놓은 듯 하다. 자신이 환자나 저능아들을 만나면서 관점이 변화하고, 그들을 한 개별자로, 자신과 동등한 한 인간으로 보려는 따뜻한 의학자의 시선으로 가득하다.


p.339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 우리는 소위 '결함학'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이야기학' 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학'이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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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색스의 책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보니 평생 책을 꽤 많이 쓰셨다. 사실 이 책에서도 자신의 책 '소생' 등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그만큼 한 주제에 대한 연구가 여러 책을 걸쳐 나오기 때문에, '음악 천재성'에 대한 부분도 '뮤지코필리아'라는 책에서 자세하게 탐구하신 듯 하다. 직업 의사라는 타이틀을 넘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저술가로 불렸던 그. 그는 안타깝게도 작년에 돌아가셨다. 이런 의사가 우리 옆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차갑고 기술적인 의술과 따뜻하고 휴머니티 넘치는 마음, 그리고 독자를 홀리는 글쓰기 능력. 이 삼단 콤보를 다 가진 의사말이다. 돌아가셨지만, 올리버 색스의 이 따뜻한 마음가짐과 관점은 정말 배워야 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배워서 되는 건 아니지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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