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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 존 그레이

by 주말의늦잠 2015. 3. 15.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저자
존 그레이 지음
출판사
이후 | 2010-08-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시선 '우상 파괴자', '반反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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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영어 원제는 'Straw dogs: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이다. (위 이미지)

이 지푸라기 개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나오는 구절인 '천지불인이만물위추구'에서 따온 것이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


존 그레이가 이 철학 에세이에서 말하는 논지가 제대로 담긴 구절이다.

어쩌면 철학자 존 그레이가 동양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존 그레이는 자신의 반 인본주의 (인류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깔고,

서양 유일신교, 특히 기독교 비판, 계몽주의 비판, 정치 프로파간다 비판, 전지구적 자본주의 비판

에서 부터 이성, 자유의지, 도덕, 진리, 구원, 계몽 자체를 무장해제 시킨다.


-


그의 논조는 명확하고, 논리적이고, 단언이다. 지적인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당연시 하던 자유주의적 휴머니즘. 신이 만들어 주신 작은 신으로서의 인간.

인본주의. 인간 중심주의. 이 휴머니스트 세계관이 '허상'일 수 있다는 부분이 우선 충격적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유일신을 믿지 않는데도 기독교적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긴,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철학, 사회학, 윤리학 등은 모두 서양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어,

인본주의는 그냥 당연히 깔고 가는 전제가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를 믿는다.

左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점차 더 '좋게' 발전한다는 믿음으로서의 진보 말이다.

이 진보에 대한 믿음은 과학기술이라는 새로운 종교로 뒷받침 된다.

과거 구원에 대한 믿음이 교회화 성당에서 체화되었던 것 처럼.

물론 그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화 시킬 수 있을지는..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한다.


" 기독교는 역사란 죄와 구원의 드라마라고 파악했다.

휴머니즘은 구원에 대한 이 기독교 교리를 보편적 인간해방이라는 기획으로 바꾼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신의 섭리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의 세속 버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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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의 책은 서문부터 결론 바로 전까지, 정말 강력한 논리구조를 담고있다.

그의 논리 안에서 덜 까이는 철학가나 사상가라고는... 그나마 쇼펜하우어, 키에르 케고르 정도.

물론 서양 철학사의 현재선에 서있는 철학자이므로, 서양철학자들과 사상가, 과학자들의 이름이 명명되고,

차례로 까인다. 무슨 회전초밥 집 같다.


우선 서양 유일신교, 기독교를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방법론'을 빌미로 깐다.

과학 지상주의자들을 깐다.

휴머니스트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깐다.

파스칼도 철퇴를 피할 수가 없다.

칸트도 가루처럼 까인다.-_-;;

니체는 그 가루가 입자가 되도록 까인다-_-;;;

어느 순간 헤겔도 까이고 있고....

하이데거, 비트겐 슈타인 등 생철학, 포스트모더니즘.. 걍 다 까인다.

존 그레이가 보기엔, 그냥 다 '인간이 이 지구에서 최고임ㅋ'하는 그 환상을

강화시키는 모래성같은 허구적 주장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동양철학 (특히 인도철학, 물활론, 중국철학 - 특히 장자와 노자)에서

그의 논지를 강화시킨다.

물론 그의 논지 강화는 동양철학 뿐 아니라,

인류학적 고찰, 문학, 생명과학, 동물학 등 전방위 분야에서도 이뤄진다.



"진보는 신화다. 자아는 환상이다. 자유의지는 착각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

굳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들자면,

이성의 능력이나 도덕원칙을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유독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이라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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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충격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주장과 별개로,

철학자로서 그의 논지를 에세이형식으로 가볍게 풀어나가는 방법도 흥미롭다.

뭐든 검증하고 증거를 내밀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는 철학자 답게 철학과 문학, 윤리학, 신화 및 과학철학, 과학에서

그의 논거와 증거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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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말인가? 소위 '그래서 결론이 뭐야?'

그가 제시하는 결론.


"오늘날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좋은 삶은, 과학과 기술을 한껏 활용하되,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온전한 정신을 주리라는 환상에는 굴복하지 않는 삶이다. 평화를 추구하되, 전쟁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은 갖지 않는 삶이다.자유를 추구하되, 자유라는 것이 무정부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서 잠깐씩만 찾아오는 가치라는 점을 잊지 않는 삶이다."


"좋은 삶이란 진보를 꿈꾸는 데 있지 않고 비극적인 우연성을 헤쳐나가는 데 있다. 우리는 비극의 경험을 부정하는 종교와 철학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행동'이 주는 위안에 기대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 동물들은 삶의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모순적이게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삶의 목적 없이는 살 수가 없다. ㄱ냥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세줄 요약.


"인간들아. 너네 지구에서 잠깐 득세하다 금방 가버릴 동물 중에 하나거든.

깝치지 말고 니 앞길이나 헤치면서 살어라. 동물로서 본분을 유지하란 말이다.

그리고 너희같은 하찮은 종을 품어준 어머니 지구한테 감사하면서 살어라"


뭐 이정도..로 가능할 것 같다.


-



어쨋든 정말 놀라운 책이다.

당신이 모더니스트라면, 기독교인이라면, 진보주의자라면, 인본주의자라면,

도덕주의자라면, 윤리 절대주의자라면, 과학 지상주의자라면, 

먼 훗날 언젠가 다가올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자라면,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엄청 화가 날 것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 그레이의 책은 100% 어그로를 끌기에 충분한 논쟁적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주장을 담았다.

그리고 그 주장은 우리 인류를 다시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히 설득적이다.


그렇다고, 책상에만 앉아서 논리놀음하는 철학자라고,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라고 그를 욕할 수 있겠는가?

그는 당신보다 현실정치에 훨씬 더 깊게 참여했었던 사람이다.

아마 당신보다 책을 더 읽어도 20배는 더 읽었을 사람이다.

그러므로 화나고 싶지 않으면 읽지 말고,

화나도 지적 충격을 경험하고 싶으면 읽어보시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