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체가 150페이지가 안 된다.
게다가 줄 간격, 쪽 여백이 넓고
가끔 한 페이지에 한 문장이 적혀있을 때도 있다.
소설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의 몇 십장은
그나마도 김화영 선생님의 해설인 걸 보고 다시 돌아가서 마지막 장을 읽었다.
마지막 장이라 해봤자 한 페이지에 문장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만큼 간결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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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이 소설의 핵심은 '여행'이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신을 찾아, 혹은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
프랑스의 혁명사와 인도차이나 반도의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망각된 전도사들의 이야기. 혹은 망각한 전도사들의 이야기.
잃고, 떨어뜨리고, 없애고, 망각하고, 상실하고, 내버리고 가는 그 여정의 끝.
최후의 2인,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는 다다른 것인가, 다다르지 못한 것인가?
여기서 이 소설의 원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번역 제목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충분히 오역의 여지가 있다.
원제는 'Annam'. 그냥 '안남'이다.
복음을 전하러 지구 반대편의 베트남.
프랑스 통치시절 베트남의 중부를 가리키던 말이 '안남'이었다.
즉, 이 소설은 교훈이나 결론을 짓는 것에는 크게 여의치 않고 끝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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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에 대해서.
문장을 최소한으로 아끼고 잘라서 쓰고 있고,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도 없다.
한 문장과 다음 문장 사이의 몇 년이 흐르기도 하고,
몇 겹의 심연이 겹쳐있기도 하다.
그리고 여러 심리나 풍경 묘사가 창백하고 맑은 느낌을 준다.
여백이 많은 문체.
그래서 문장과 문장, 장과 장 사이에, 느낌이나 생각의 여지를 많이 준다.
성기지 않은 그물코로 잡아낸 커다란 덩어리.
미사여구와 여분과 잔 교훈과 부가적인 느낌은 다 사라지고
독자들에게는 큰 덩어리 같은 것만 남게 된다.
그게 뭔지 자세히 알려주는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다.
p.s. 21살때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몇 작가들이 이걸 알고선 낙담했다고 하는 썰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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