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수화물 무게를 달랑달랑 맞추느라 고심해서 결정해 가져왔던 책 10권.
그 10권 중 하나가 이 황정은 작가의 '파씨의 입문'이었다.
소설 읽는 재미로 술술 5권을 읽어 '제꼈'는데,
그러다 보니 소설집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읽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몇 일 전 한 번 더 읽었다.
파씨의 입문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야행, 대니 드비토, 낙하하다, 옹기전, 묘씨생, 양산 펴기, 디디의 우산, 뼈 도둑, 파씨의 입문.
이들은 복합적이거나 스토리라인을 살린 소설이라기 보다는,
간단명료한 상황과 절제된 언어에서 묻어나는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소설들이라 느꼈다.
뭐랄까,
나로서는 방안에 혼자, 혹은 자신만의 세상에 집중하는 고요한 세계의 화자들이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런 감정도 느껴졌다.
뭐랄까, 세상과의 단절감이 느껴졌다.
밑도 끝도 없이 영원히 낙하하는 화자,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고양이 화자,
죽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주위를 떠도는 영령 화자,
찌고 더운 여름에 양산을 팔며 세상을 바라보는 젊은 화자, 등등...
이 소설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동물/영령 (or whatever it is)은
일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치 채지도 못하는 존재들일 가능성이 많다.
길거리에서 먼곳을 응시하는 늙고 누추한 구걸인들,
담벼락에서 음식쓰레기통을 기웃거리는 추한 몰골의 고양이들,
배수구가 없는 싱크대를 놓고 먼 산골에서 사는 이들,
죽어버린 이들, 곧 죽을 이들, 이들은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들의 심정에서, 처지에서 목소리를 내주는
작가의 작고 고요한 반란심 같은게 느껴졌다.
각각의 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로도 읽힌다.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극도로 단순화 하여 생각하면...
결국 우리도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의 주변인일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그리고 살아가는 세계는
돈과 캐피탈, 물질에 대한 목소리가 더 큰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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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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