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혹은, 몇 주전 읽다 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오늘 더 읽었다.
오늘 '무릎', '조동옥, 파비안느', '가을이 오면' 그리고 '내 아들의 연인' 이렇게 네 작품을 읽었는데..
의도하지 않게 모두 여성작가의 작품이었고, 그 속에 진한 모성성, 그리고 여성의 심리를 그린 작품들이었다.
재미있는 대비는 '가을이 오면'에서는 진득하고도 집요한 엄마와 딸의 대립이 소설의 가장 표면에 나와있는 반면 '조동옥, 파비안느' 에서는 엄마와 딸의 시간과 거리를 넘은 진득하고도 집요한 끈 어쩌면 정, 애, 그리움이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내 아들의 연인'은 특히 내가 가나에서 겪은 심리적 내적 갈등을 약간 엿본 것 같아 더 흥미로웠다. 보통 한국소설의 여러가지 제약 중 하나가 작품의 이야기와 화자가 중산층에 편중되어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소설 같은 경우는 강남, 서초 어느 부유한 아파트에서 사는 부유한 가정의 어머니로 설정되어 있는 화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이질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 주변에 '다른 세상' 어쩌면 가난으로 대표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초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는 고급 백화점의 마사지 테라피스트 숍에서 척추에 차례로 오르는 뜨끈한 돌의 온기를 느끼며, 이 또한 식어갈 것이라, 모든 것이 식어갈 것이라, 그렇게 내뱉는다. 일상 생활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인간들 - 대부분의 우리들 -의 경우 이는 그대로 적용된다.
가나에서 나는 어쩌면 경제적, 사회적 상위층의 삶을 살고 있다. 주변에 대사관들이 밀집하고 호화 주택이 들어선 가장 부유한 지역에 살고 있고, 가나의 일반 노동자들이 몇주를 벌어야 할 돈을 한 끼에 써보기도 하고, 집에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있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부유한 삶이다. 내가 한국에서 사는 중산층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유한 삶이다. 그리고 이 부유함은 너무나 편안해서, 이런 삶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싶고, 계속 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특수한 '보수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도 여성화자의 아들이 가난한 여자친구에 대해 고민하며 음악을 들으며 한다는 이야기가, '난 과학이 딴 이만큼만 발전하고 스톱했으면 좋겠어요'. 여성화자는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신세대란 으레 튄다는 건, 어른들의 편견일 뿐이다. 편하게 자란 아이들은 때로, 놀랍도록 보수적인 행태를 보인다'라는 꽤 분석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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