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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고래 - 천명관

by 주말의늦잠 2013. 5. 21.



고래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4-12-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인 천명관의 '특별한' 장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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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이라는 이름을 어디에서 봤던가,

몇 년전 도서관 '한국소설' 섹션에서 이상하게 끌리는 느낌에 집어들었던 이 소설.

그리고, 그 후에 고령화 가족이라는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천명관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했던 장면도 어렴풋하다..



주말에 다시 집어든 이 소설, 형언할 수 없이 빠져들어 아침에 집어든 소설을

점심전에 다 읽어버렸다. 그 만큼 재미있었다.


이 소설이 그렇게도 흡인력이 강했던 까닭은, 아마도,

천명관이라는 작가가 천부적인 이야기꾼이기 때문인 것 같다 -



소설은 아주 오래된 과거로 부터 덜 오래된 과거로 이르는 파란만장한 여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 삶은 작가의 상상력과 전통 설화적인 분위기와 버물려져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소설을 읽어갈 수록 촘촘이 짜이고, 그 위에 능란하게 수놓아진 정교한 천조각을 연상하게 했다.

웅장한 서사구조 속에서 세세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각 개인의 역사들.


그리고 그 속에는, 대하 드라마가 있고, 신화가 있고, 로맨스가 있고, 설익은 농담이 있고,

판타지가 있고, 무협이 있고 그리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인 '고래', 역시 마지막까지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 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는 프링글스처럼, 


한 번 책을 열면 '여는 것은 자유지만 닫는 것은 아니란다' (참고로 이 문장은 엉덩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인상깊은 구절들 - 저장용.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과연 금복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기적같은 행운이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런 행운이 찾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주인공이 된 것일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불경스런 질문이며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하는 것처럼 까다로운 질문이다.



끝없이 상실해가는 게 인생이라면 그녀는 이미 많은 것을 상실한 셈이었다. 유년을 상실하고, 고향을 상실하고, 첫사랑을 상실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젊음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