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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 김영하

by 주말의늦잠 2013. 10. 4.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2-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김영하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어쩌다가 중간에 읽다 만 '검은 꽃' 이후로 3번째로 접하는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이다.

처음에 표지와 제목만 보면 김영하님 특유의 도시적이고 약간의 충격 요소가 섞인 

아련한 성장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려나 했는데, 음, ...이 소설, 참 정의하기 애매하다.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와 함께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1장, 2장까지는 유년과 청소년기의 성장과 방황이 주된 흐름이라고

생각했는데, 3장, 4장으로 가면서 성장과 방항에 대한 르포르타주적 묘사를 넘어

계급의 문제, 사회 속 경찰 조직의 근원적인 모순 등을 그 근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약간의 종교적/ 구원설화적인 맛도 소설 전반에 배어있기도 해서 ...

참 이 소설은 '이런 이런 소설이다'라고 요약 정리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뭐랄까.


고속터미널 누추한 화장실 한 켠, 십대의 자궁에서 탄생한 '제이'의

필연적으로 '주변화'될 수 없는 삶과 그 속에서 자신의 성을 쌓아가는 과정.

세상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또 사물과 대화하는 능력,

버려진 책을 읽고 길거리의 삶의 중심에서 여느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인간상이 되어가는 그 과정.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는 '제이'의 세상에 대한 외침, 

그리고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이 주변화 되는 - 특히 가난한 - 이들에게 

기계적으로 무관심한 세상에 대한 복수어린 외침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아주 담담한 필체로 펼쳐나가는데. 


정말 뭐랄까, 씁쓸한 맛이다.




우리는 아주 '정상'적인 가족 환경에서 태어나, '중산층'의 삶을 살고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통과의례를 아무 의심없이 밟아왔다. 대부분은.

이 사회에 몹쓸 운명으로 혹은 가난의 대물림을 필두로 한 필연의 수레바퀴 속에서

'정글'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10대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신문 사회면의 '단신'정도의

중요성 정도밖에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씁쓸함이 남는다.


김영하씨가 묘사하는 이 '방황하는 10대 청소년'의 삶은

실제 도처에서 벌어지는 10대의 치기어린 폭력과 광기 그리고 범죄의 현실을

쳐내고 쳐내고 또 쳐내서 가장 순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10대들이 살아가는 삶은 우리에게는, 나에게는 다소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김영하씨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묘사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에 놀랐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모를수가 있나, ... 이 당연한 현실을? 


그렇게 우리는 현실의 많은 부분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에서 '제이'는 길거리에 사람들이 버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특이한 독서법을 추구하는데,

그 독서법이란 맨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찢어버리고 중간만 읽는 것인데,

'소설가들은 처음과 마지막에 사람을 홀리는 요소를 넣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특이한 독서법과 기벽을 행하는 것들이 사회에 뒤틀린 시선을 투시하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이와 아주 동일하게, 우리들 또한 현실이라는 한 권의 책을 발췌독하고 있다.



어디서 가출 청소년들이 난교파티를 벌이고, 장애친구를 유린해서 수급을 받아먹고,

매매춘을 하고, 물건을 훔치고,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어떤 난동을 벌인 그 수많은 

뉴스 기사들과 이야기들을 읽고, 대부분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냥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갈 뿐, 그냥 그 뿐인 것이다.

그런 일들은 10대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케이스로 치부하고는

우리가 사는 안락한 중산층의 삶으로 다시 잠식되어간다.





인용 - 저장용.


" 개도 영혼이 있어. 영혼이 있다고!" 제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 영혼이 있어서, 그래서 어쨋다는 거야?"


개장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여차하면 등산화 발로 밟아버릴 태세였다. 그러나 제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영혼이 있는 것을 그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거야."




너희들은 죄를 지었고 나는 그것을 응징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너희의 고통을 내가 겪어야 하는가. 눈을 감아도 환영들은 계속 찾아왔다. [...] "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가면 그들의 고통이 내 영혼을 짓눌러. 그들이 지고가는 삶의 무게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 시위대는 언젠가는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시민에게 고개를 숙이지만 마음까지 굴복하지는 않는다. 그게 경찰이다. 자유분방한 풍자와 조롱이 만연한 시위현장에서 무거운 복장을 착용한 경찰관들을 놀려먹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러니까 국가는, 비록 굼뜨고 어리석을지 몰라도 집요하다. 망각을 모른다. 채증한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폭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천천히 일깨워준다.




승태는 무력감을 느꼈고,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혐오로 발전했고, 그 더러운 감정의 진창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승태의 영혼은 폭력이라는 강력한 흥분제를 원하고 있었다. 오직 그것만이 내면의 어둠을 직시하려는 승태의 심안을 바깥으로 돌릴 수 있었다.




우리들 각자는 만인을 위한 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 발 밑엔 무한한 벌판.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과거에 읽은 어떤 소설보다 조금 더 잘 기억이 나는 한 권의 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몸속에 있어도 모른다면서요? 암 말이에요. 우리 같은 애들도 사람들은 전혀 못 봐요. 투명인간처럼 쓱, 지나가버리는 거죠. 좀 거북하고 불편하고 뭐 그럴 뿐이죠. 정 심하면 도려내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