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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매드 사이언스 북 - 레토 슈나이더

by 주말의늦잠 2015. 4. 4.




매드 사이언스 북

저자
레토 슈나이더 지음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 2008-10-31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최고로 재미있는 과학책! 2005년 올해의 과학책!1달러짜리 지...
가격비교




  매드 사이언스 북은 먼저 제목이 눈을 끌고, 표지가 흥미를 당긴다. 1304년의 무지개 실험부터 시작하여 2003년의 로봇개 실험까지, 약 700년의 기간 동안 인류가 벌인 '미친' 실험들을 111개나 모아놓았다. 1300년대 이후에는 몇 백년을 뛰어넘어 1600년대와 1700년대의 실험을 소개하는데, 중세를 지나 유럽에서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신이 아니라 과학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듯 하다. 2015년의 시점에서 보면, 뭐 저런걸 가지고 저렇게 치열하게 실험하고, 고찰했나 싶지만.. 어쩌면 500-600년 이후의 인류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면-_-;) 현재 우리를 보며, 우주나 타 행성, 외계인에 대해 "저렇게 몰랐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 할지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자연이나, 생명의 원리, 동물, 전류, 등등 인간의 주변에 대한 탐구가 진행되다가, 1800년대부터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는 것이 흥미롭다. 책의 제목인 미친 실험 답게, 전염병을 연구 하기 위해 환자의 토사물을 먹는 과학자, 배에 구멍난 사나이를 10년 이상 괴롭히며 소화 과정을 연구한 과학자, 근육을 자극하여 해괴망측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과학자, 기니피그의 고환을 가루로 만들어 먹으며 영생을 연구했던 과학자, 마취를 연구하며 조수의 음모와 고환을 잡아당겼던 과학자 등등.. 비로소 1800년대 부터 읽으면서 얼굴이 찡그려지는 (-_-;) 해괴한 실험들이 등장한다. 제일 무서운 실험 장면은 단두대에서 잘린 머리에 전기를 흘리거나, 잘린 머리가 얼마나 생존해 있는지 관찰하고 개의 몸통이나 다른 잘린 머리와 접합하는 그런 장면들이다. 지금의 윤리의식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실험들이다. 하지만 이 때는 인권의 개념이나, 과학 연구 윤리 개념이 현재보다 훨씬 덜 정립된 시대였다. 그리고 이 때부터 동물실험이 정교화 되는 경향도 발견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1400년대 부터 있어왔지만, 동물을 완벽한 객체로 보고 (하긴 사람가지고도 미친 실험 하던 시절이니..) 동물을 자르고, 죽이고, 다양한 약물을 주입하고, 하는 그런 실험실의 모습은 1900년대는 훨씬 체계적이고 일반적으로 행해진다. 인간에 대한 실험윤리는 훨씬 강화되는 데, 그 반대 급부인양 '실험쥐'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흔하진 않은가? 그 누구도 동물을 가지고 실험하면 안 된다! 라고 맹목적으로 반대할 수도 없고, 동물로 실험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하고 맹목적으로 찬성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분명, 동물 실험을 통해 인류가 생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심리적, 의학적 등등의 분야에서 얻은 지식이 방대하고 그것이 인류의 이해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온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약간 해괴하고 미친 실험들만 나열하다 보니, 과학자가 괴롭히고 죽인 동물의 희생에 비해 얻은 지식이 너무나 미미한 실험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자가 처음부터 실험의 결과나 파급력을 예측하고 실험을 시작하는 게 아닐진대, 그 긍정적인 측면의 가능성으로 동물 실험을 무비판적으로 관행적으로 실시하는 것 역시 근거가 희박하지는 않는가? 




 


중간에 나오는 소련 과학자 데미코프의 개 이식 실험. 저 두마리의 개는 어미와 새끼 관계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듯 했으나 감염으로 두 마리 다 사망했다.ㅠ

물론 이런 극단적인 동물실험은 현재에 와서는 연구윤리에 어긋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의약품에서 부터 화장품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임상실험에 동물이 체계적으로

동원되는 우리의 깨끗하게 숨겨진 실험실 내부의 모습이 이보다 덜 처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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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는 단연 미친 실험의 파도가 몰아친 시대로 보이는데, 1900년대, 1910년대, 20년대, 30년대 부터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실험들을 소개하는 것만 봐도 18, 19세기에 비해 20세기에 몰아친 과학 실험의 학문적 경향화가 보인다. 그리고 뚜렷한 경향이라면, 이제 이러한 실험이 거의 심리학과 뇌심리학 분야에서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과연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지, 인간은 동물이지만, 인간답게 하는 그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과학계의 궁금증이 보이고, 인간 행동, 행동의 동기, 인간의 본성이나 성향, 패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1900년대의 실험 중에는 이미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있는 굵직굵직 유명한 실험들도 등장한다. 호손공장의 조립실험이나 스키너의 실험, 밀그램의 권위복종 실험, 나쁜 사마리아 인 실험, 감옥 실험, 죄수의 딜레마 실험, 할로의 애착 실험 등등.. 하나 같이 우리의 민낯을 까발려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실험들이다. 


  이 심리실험들을 훑어보며 재미있었던 점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행해진 현대적인 실험들이고, 또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실험들이기에 나와 내 주변의 예에 적용시켜 생각해보기도 할 수 있었던 점이다. 70년대와 80년대로 오면서, 점점 더 남녀 사이의 관계나 남자와 여자의 심리, 성욕에 대한 실험도 많이 등장해서 더 흥미롭게 적용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히치하이킹에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찾는 실험들이라든지, 무작위로 잠자리를 제안하여 그 반응을 살피는 실험이나, 남자의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호르몬에 여자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시험, 작업이 성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는 실험 등등.. 아마 사람들의 흥미를 더 자극하는 실험들은 여성과 남성의 오르가즘을 관찰하거나, 남녀가 성적으로 결함 시 장기 내부를 관찰하기 위해 MRI 내에서 섹스를 하게 한다든지 하는 소재들이다. 참 재미있다. 내가 몰랐던 나의 심리, 내 몸의 작동 원리를 배울 수 있기도 하고, 정말 그럴까? 나라면 안 그럴텐데..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특히 빨간책방을 들었던 기억으로는, 이 책의 저자 레토 슈나이더가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전문 칼럼니스트라고 한다. 그가 이 111개의 실험을 수집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글쓰기를 계획하고, 편집하고, 구사하는 과정이 저자에게 커다란 재미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에서 한 주제에 몰두하여 남들이 아무리 하찮거나, 어이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실험을 하고, 자기 자신과 가정까지 내팽개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탐구하는 그 저자의 옆모습 역시 얼마나 흥미로운가. 


  우리는 학교에서 제너럴리스트로 교육받는다. 문학작품도 잘 알아야 하고, 수학 삼각함수도 풀줄 알아야 하며, 영어 듣기도 술술 이해해야 하며, 역사, 지리, 윤리, 철학, 등등 상당 부분의 사회과목 (문과의 경우)을 이수해야 한다. 나는 못내 정규 교육 과정에서 과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지 못 한 것이 아쉽다. 다양한 분야에 교양과 소양을 가진 제너럴리스트를 향하는 교육의 산물들이, 다 반쪽짜리라는 것은 얼마나 슬픈 역설인가. 이과생들은 시를 읽지 않고, 문과생들은 상대성 이론을 알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대중 과학서를 읽으며 과학과 철학, 인문학이 사실은 그렇게 이분법적인 문/이과의 식민지 시대적 잣대로 가를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이 모른다.. '수학의 정석'에 질려 수포자가 되거나, 수학에 질려 사회에 나와 과학의 영역을 들춰볼 기회가 없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과인들에게.. 이렇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과학책만큼 좋은 입문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