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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by 주말의늦잠 2015. 4. 14.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출판사
까치 | 2014-12-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 권이 아니라 이제 합본 한 권으로 읽게 된 개역판 존재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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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 소설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5년간에 걸쳐 쓴 세 개의 소설을 합권하여 한국에서 개정판으로 내놓았다. 그러므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 자체는 한국의 편집자가 결정한 것이고, 실제 세 권의 소설 이름은 다음과 같다 (위의 이미지). Le Grand Cahier. La Preuve. Le Troisieme Mensonge. 즉, 큰 공책. 증거. 세 번째 거짓말. 각각 1986년, 1988년, 1991년에 발간된 소설로서,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불어로 소설을 발표한 것이 흥미롭다. 실제로 체코 작가로서 불어 작품을 쓰는 밀란 쿤데라와도 종종 함께 언급되는 작가기도 하다. 같은 동구권에서 비슷한 냉전과 시대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모국어가 아니라 불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그 양상이 비슷하기 때문일지도..



# 비밀노트/ Le Grand Cahier


  짧은 호흡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가득 찬 짧은 장의 연속인 소설이다. 전쟁의 상황에서 엄마가 쌍둥이를 할머니에게 맡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할머니는 자상하고 푸근하다기 보다는 신경질적이고 포악하다. 소설에서 쌍둥이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고, 전쟁의 상황에 관련한 나라나 상황에 관련한 고유명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마치 '전쟁'이 삶의 다방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보편적인 텍스트로 읽힌다. 쌍둥이의 생존을 위한 모습은 건조하고 관찰로 가득한 문체로 그려졌기에, 더욱 참혹하고 애처롭다. 쌍둥이는 언제나 함께이고, 언제나 함께 행동하고 생각하므로 '우리'라는 주어로 표현된다. 그들은 먹기위해 노동하고, 더러움과 고통에 대항하기 위해 더러움과 고통을 단련하고, 감정의 물결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을 단련한다.


 그 주변의 군상들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옆집 언청이를 성추행하고 또 도움을 주는 신부, 쌍둥이의 옷까지 팔아넘길 정도로 매정하지만 전쟁 포로들에게 실수인 척 사과를 떨어뜨리는 할머니, 쌍둥이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지만 아동 성추행을 하거나, 전쟁포로에게 악독한 장난을 하는 성당의 하녀... 쌍둥이 역시 그렇다. 그들은 '착해지기 위하여' 혹은 '불쌍해서' 남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그냥 그 상황에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갖다주는 행위를 할 뿐이다. 그렇게 모두가 생존에 목을 거는 상황에서, '도덕'과 '윤리'란 얼마나 얄팍한 정신의 놀음일 뿐일까? 그 상황에서도 남에게 이로운 행위를 한 다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그냥 '그 곳에' 그 사람'이 있었으므로 가능할 뿐, 그 누구도 선과 악을 따져 죄를 물을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죄를 짓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므로.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이 쌍둥이가 교대로 종이에 연필로 적는 작문노트의 내용이라는 점이다. 쌍둥이는 작문에 있어 확고한 원칙으 세우고, 그에 따라 작문을 하는데, 이는 소설 전체의 분위기의 바스라질 듯한 건조함 속의 충격이나 감정을 전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다. 이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작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일지도.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장은 입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 타인의 증거/ La Preuve


  두 번째 소설인 '타인의 증거'를 읽고, 나는 이 소설이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임을 확신했다. '비밀노트'의 마지막에 쌍둥이는 극적으로 분절을 경험한다. 갑자기 찾아온 아빠의 국경 탈주를 돕다가, 아빠는 죽고 한 명은 국경을 넘고 한 명은 다시 국경마을의 집으로 돌아온다. '타인의 증거'에서는 갑자기 쌍둥이 중 한 명이 이름을 갖게 된다. 루카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게 되면, 이 소설 자체가 국경을 넘었던 '클라우스'가 상상한 루카스의 국경마을에서의 삶이었음을 알게 된다. 국경 마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물들의 우여곡절과 다채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마지막 2장 가량에서 이런 사실이 나오는데, 마치 '속죄'를 읽었을 때 처럼 갑자기 훅, 하고 소설 바깥으로 또 액자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두번째 소설에서 나오는 루카스와 그 등장인물들은 각 하나하나가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롭고 다채로운 목소리를 낸다.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방황하는 야스민과 그녀의 불구 아들 마티야스, 남편이 억울하게 죽은 후 정신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도서관 직원 클라라, 알콜 중독이지만 언젠가 책을 쓰겠다는 꿈을 가진 서점 주인 빅토르,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소심한 동성연애 성향을 가진 공산당 간부 페테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불면증 환자.. 기차를 탄 독자가 창 밖으로 한 참 산을 보다가, 강이 나오고, 바다가 나오고, 평야가 나오고 하듯이, 한 명 한 명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루카스에게) 하는데, 그 목소리가 생생하고 파닥거렸다. 특히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지만 나이에 비해 너무나 똑똑한 불구인 마티야스는 아이의 위악성과 선천적인 불안함이 참 처연하게 느껴졌고,언젠가 책을 쓰고 싶은 알콜중독자인 빅토르의 이야기 역시 하나의 단편 소설처럼 본 소설 속에 실려있다. 


  빅토르의 이야기와 그의 소설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쉰 살밖에 안 됐어.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을 거야. 몇 권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그래서 클라우스는 '루카스'의 이야기를 '쓰는 행위'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것이 아니던가?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니까. 뭔가를 쓴 인간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긴 것이니까. 그래서 마티야스가 7살의 나이에 자살을 하기 전, 자신이 루카스-클라우스 쌍둥이들처럼 적던 작문노트를 불태워버린 것도 처연하다. 마티야스는 존재했던 증거를 불태워버리고 그렇게 하얗게 사라졌다. 빅토르는 결국 자신을 어릴 적부터 괴롭혔고, 성인이 되어서는 도와준답시고 책 출판을 끝없이 종용하는 누나를 살인한 후에야 소설 한 편을 쓴다. 누나의 살인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그는 소설 한 편을 남기고 사형장에서 죽는다. 


  '그들은 왜 나를 죽이려 하지? 나를 살리면 몇 편의 소설을 세상이 얻을 텐데, 나를 죽이면 시체 한 구 밖에 얻는 게 없잖아'하는 빅토르의 말도 참 곱씹어볼만 하다. 인간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그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고 사라져 가는 그런 존재라면. 어쩌면 그 '쓴다'는 행위 자체가 윤리적이고 이타적인 것일 수 있다. 그 누구도 기록해주지 않고, 말해주지 않은 이름없는 존재들을 명명하고 소설에 데려다 살려놓음으로써, 그를 기억하고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므로. 소설이 존재의 '증거'가 되는 것이므로.



# 50년간의 고독 / Le Troisiem Mensonge


  이 소설은 제 3부작 (이라 칭할 수 있다면)의 마지막이다. 그런만큼, 생생한 인물의 등장이나 구성보다는 1부와 2부를 아울러 '접합'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제 2부 '타인의 증거'의 클라우스는 사실 '클라우스'인척 하고 외국에서 살았던 루카스임이 밝혀진다. 소설에서는 C로 시작하는 클라우스와 K로 시작하는 클라우스로 둘을 구분하고 있다. 고향으로 50년만에 돌아온 루카스는 이제는 많이 변한 K시 (국경마을)를 돌아보고 종국에는 진짜 클라우스를 만난다. 하지만 진짜 클라우스는 루카스를 부정한다. 루카스가 자신의 진짜 쌍둥이 형제임을 알고 있지만, 어머니를 빼앗기기 싫어서 혹은 어머니와 자신이 힘들게 이루는 평화를 깨뜨리기 싫어 그를 부정한다. 하긴, 그것도 그럴 것이, 쌍둥이는 평생 서로를 그리워했긴 했지만 15살 정도가 되어서야 분절을 경험하는 1부와는 달리 실제로는 아주 어린 4살 때 헤어지고 못 만난 형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자신이 실수로 쏜 총을 루카스가 맞아 죽었다는 환상과 죄책감으로 극심하게 루카스를 편애하며 클라우스를 대했다. 그래서 루카스는 대사관으로 가는 길에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클라우스도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기차, 그래, 그건 좋은 생각이다'의 마음으로 똑같이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할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돌아가기 전, 클라우스에게 자신의 미완성 소설 원고를 건넨다. 바로 이 '세번째 거짓말'이라는 소설이다. (한국어로는 50년간의 고독이지만..) 그래서 클라우스는 소설을 읽고 마지막 까지 완성해낸다. '비밀노트'와 '타인의 증거'는 모두 루카스가 쓴 상상의 소설이었고,3번째 소설인 '세번째 거짓말'은 루카스가 시작하고 클라우스가 완성한 공동 저작이다. 이 소설 속에는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아버지가 바람이 났고, 그에 화가난 어머니와 다투면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총으로 쏘며, 실수로 루카스를 쏘아 병원에 입원하면서 두 쌍둥이가 분절된 진짜 사건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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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타 크리스토프 자신이 밝혔듯이,"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고 했다. 소설의 국경마을 K시는 작가가 실제로 어린시절을 보낸 헝가리의 쾨세그 이고, 그녀 역시 어려서 국경을 넘어 자신과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던 오빠와 분절을 경험했다고 한다. 소설 속 루카스는 그녀의 현현이고, 클라우스는 그녀 오빠의 현현이라 읽어도 무방할 듯 하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찌 독일의 점령 후 소련의 지배, 이어지는 냉전. 유럽의 회몰아치는 전쟁과 이념의 현대사가 이 작가의 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어렴풋이 알듯도 했지만, 정확히 알 길은 없었다. 


  소설의 제목이 '세번째 거짓말'이다. 소설에는 루카스가 한 세 가지 거짓말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내가 '비밀노트'와 '타인의 증거'를 읽으며 아, 이게 사실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소설의 내용이 전복되는 것을 2번이나 경험한다. '타인의 증거'에서 한 번. 그리고 이 루카스가 하는 세 가지 거짓말을 들으며. 그렇다면.. 마지막에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공동으로 쓴 소설 역시 사실이라 믿을 '증거'는 이 소설 뿐이다. 진짜 총을 맞은 것이 루카스였던가? 국경을 넘은 것 역시 루카스 였던가? 마지막 까지 루카스를 부정한 클라우스는 분절된 상태로 소설에서의 합일을 꿈꾼 것인가?.. 다 읽고 나서 1부의 날것의 충격과, 2부의 생생함과, 3부의 전복이 쓰리쿠션으로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듯한 그런 소설이다.정신이 혼미하면서도 뭔가 정확하게 짚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