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은 문학평론가다. 읽고 쓰는 일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씨네 21이나 한겨례에서 그의 글을 간헐적으로 접하고, 또 지난 해 문학동네 채널의 문학이야기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를 알게되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평론집인데, 우연하게도 문학평론집이 아니라 그의 영화 평론집부터 읽게 되었다. 주로 최근 영화들이라 내가 보지 않은 영화들이 대부분이었고, 본 영화들은 러스트 앤 본,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 홍상수, 박찬욱, 김기덕 감독의 영화 몇 편... 그정도였다. 사실 최근 2-3년간 해외 체류로 인해 (특히 아프리카 였기에) 영화를 조용히 앉아서 음미하며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본 영화들을 그의 눈으로 다시 읽어주는 순간, 나는 콧잔등이 찡해질 뻔 했다. 영화라는 시각매체가 들려주는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받았던 그 두루뭉술한 느낌과 잡히지 않는 감각의 순간들을 그는 어찌도 이리 정확히 짚어내고, 도식화 해내는가. 지하철에서 읽다가 30분 거리의 역을 지나치는 줄도 모르고 앉아 읽은 영화평들도 있었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먼저 영화를 보고 그의 평론을 읽고 싶어, 일부러 건너 뛴 글도 3-4편 있다. 이 책을 '일부러' 완독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밝히듯이, 자신의 영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시각 매체나 영화적 기술 보다는 이야기 즉 스토리 텔링에 집중한다. 그가 이 평론집에서 내놓은 김기덕과 홍상수의 비교, 대조에서 나는 소름 돋을 뻔 했다. 이야기가 너무 산만하다고 느꼈던 러스트 앤 본과 조제 이야기에서 끌어낸 공통 분모로 이야기가 날씬하게 펼쳐지는 경험을 했다. 그의 문학관은 그의 세계관과 대부분 합치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가 영화 속에서 읽어내는 인물과 이야기들은 그의 관점과 그의 세계를 읽는 방식과, 그의 윤리로 설명된다. 한 영화라는 작품의 해설이 문학 작품처럼 읽히는 이 경험은, 아마 동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없이 그가 출간 한 책 2권을 주문했다. 고민없이 그가 추천한 소설 책 1권도 주문했다. 고민없이 그가 추천한 시인들의 이름을 메모했다. 일면식도 없는 그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선생님이 되어준다. 선생님이란 말이 너무 닳고 닳아 나의 느낌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는 나에게 독서 자판기, 독서 나침반, 독서 계단이 되어준다.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는 그를 찾을 것이다. 그를 찾아내서 정말 행복하다. 그의 '느낌의 공동체'에 속해 이 세상 '몰락의 에티카'를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가 있어 나는 영원히 찾지 못할 '정확한 사랑'을 찾는 이 불가능한 여정이 즐겁다.
p.s. 그는 아주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쓸 것같이 생겼다. 목소리만 듣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야위셔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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