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에 처음 소개된 노르웨이 작가 요 뇌스베의 스노우맨. 엄청난 흡입력으로 책의 초중반부터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영국의 셜록 홈즈를 떠올리게 하는, 노르웨이의 해리 홀레 형사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인물로 지독한 알콜중독이지만 오슬로 최고의 형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노르웨이 사회의 각종 이면을 살펴본다는 것이 신선했고, 추리형사의 장르물을 넘어서는 뛰어난 문장력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또한 암청나다.
한 때 늘 붙어다녔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함께했던 시가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마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꿈처럼 느껴진다.
반드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맞는지 입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옷들이 생기는 시작점인 것이다. 이제 다른 것들도 따라 올 것이다. 더 좋은 것들. 더 나쁜 것들.
그들 마음속에는 꿈이 있네, 해리. 기회가 찾아오는 꿈. 남자들에게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사회적 욕구가 있어.
해리는 수첩을 꺼내 들었다. 들고 다니기만 할 뿐, 실제로 뭔가를 적지는 않지만 경험상 수첩을 꺼내들면 사람들이 집중을 잘했다.
노르웨이는 너무 작아서 두 다리만 건너면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이라는 말.
전 죽음이 삶보다 더 매력적인 순간이 올 때 자살을 가치있는 행동이라고 말한 제논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광기와 악이 전혀 다른 두 개체인지 혹은 더는 파괴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단순히 그걸 광기라고 불러야 하는지 같은 질문의 해답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물론 직업병이지. 뭔가가 진실 비슷하게 확정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기에 반박하는 일이 내 직업이오. 그게 곧 자유주이지.
전망 좋은 집에서 살아 볼 필요가 있지. 좋은 전망은 균형있는 관점을 갖게 해주거든.
독수리 같은 언론, 오지랖 넓은 이웃 주민들, 피에 굶주린 실세들. 그들은 시신에서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 맛있는 부위를 한입씩 차지할 것이다.
에우네의 말이 옳다. 모든 아이들이 완벽한 기적이라면, 삶은 근본적으로 퇴보해가는 과정이다.
이봐요, 간호사 양반. 살고자 하는 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죽고자 하는 자에게서 죽음을 빼앗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쁜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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