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트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잃어버린 성배를 둘러싼 수도원의 살인사건으로 훌륭한 팩션 (Faction)을 이끌어 나갔다면,
베르베르는 정말 중세 기사단의 잃어버린 성배, 성배 운운하는 전설 전반을
자신이 구성한 '웃음의 성배'를 찾아 떠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그 속에는 역시 살인사건이 있다.
어디선가 베르베르의 의기양양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 유머.
유머는 인간생활에 있어 매우 중대한 가치를 지니지만 매우 저평가된 덕목 중 하나이다.
유머나, 코미디, 웃음 그리고 코미디언..
이런 단어 주위에는 항상 나부랭이, 저열한, 가벼운, 심심풀이 ... 같은 단어가 맴돈다.
하지만 베르베르는 우스갯소리가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문학예술의 한 갈래'라고 선언한다.
실제로 피식 웃음을 짓게하거나 박장대소하는 이야기들은
그 단순한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에게 어떤 물리적인 것을 경험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처음에 1권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는,
뭔가 읽어나가는 것이 재미있지만 잘 갈피를 못 잡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고, 또 2권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인류의 역사가 사실은 유머와 농담, 웃음에 의해 발생하고, 운영되고 지고...해왔다는
교묘하고도 이상한 이 세계관에 조금씩 수긍하게 된다.
그래서 이 '유머'와 '웃음'이라는 권력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파가 갈리고, 권력싸움을 하고, 코미디를 대량 공장생산체제 (비바 캐피탈리즘!?)로
생산하고 보급하는 그런 일련의 매커니즘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닮아있어
참 여러번 이 작가의 재능에 감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소설 곳곳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와 유머들은
노트에 적어놓고 여러번 읽어도 될 만큼 훌륭하다. )
최고의 우스갯소리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는거야.
진실을 안다는 것은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미치지 않기 위해 웃는거야.
웃음이란 자기표현을 억압하는 가혹한 사회적 기계장치에 대한 생명의 항변이다.
글쓰기의 기술이란 무엇보다도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것이다.
남들의 생각을 인용하는 것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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