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을 정말 늘어지게 잤다. 지난 주말에도, 지지난 주말에도 늦잠을 일부러라도 자면서 잠을 보충하려고 했지만 오늘은 신기록을 수립했다. 오후 2시. 솔직히 어제는 몇 시에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일부러 잠을 보충하려고 늦잠을 계획하는 날은 명확한 꿈을 꾼다. 오늘도 눈을 뜨고 꿈에 취해 몇 분간 헤롱거렸다.
나는 잠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잠이 없기도 하다. 편안한 분위기 (내 침대, 밤 시간, 따뜻한 차 한잔과 책 혹은 라디오)에서는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는데, 불편한 분위기에서는 잠을 못 잔다. 20대 후반으로 들면서 공간적 불편함에의 반응도가 민감해졌다. 그래서 저번에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14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동안 뜬 눈으로 고된 비행을 하기도 했고, 버스, 지하철에서는 졸지를 '못'한다. 밥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도, 옛날에는 식곤증 탓에 커피를 들이켜야 했는데 요즘은 커피 없이도 잘 견딘다.혼자 있지 못함을 거북스럽게 느끼게 된 건가, 해서 걱정도 된다. 이렇게 민감해서야..
8월 부터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게 된 까닭에 책도 많이 읽지를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독서를 시작하면서, 가나에 있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집어들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이 블로그에도 감상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오늘 '중년기'의 이야기를 읽는데 역시 유아기와 청년기를 읽을 때 보다 반응이 더 잘 온다. 몇 구절 인용.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사람들이 창조적인 성취를 해내는 것은 대부분 30대 때이다. 에드가는 말했다. '25세에는 누구나 재능이 있다. 50세에도 그 재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31세에 톨스토이는 말했다. '우리 나이가 되고서, 머리를 굴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 자체를 통해서 불현듯 이제는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힘들고 또한 헛되었다는 것을 깨치는 순간, 아울러 고민인 듯 끔찍하게 여겼던 노동과 노력이 어느덧 인생의 유일한 요소가 되었음을 깨치는 순간, 모색과 번민과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한탄 같은 젊음의 특징들은 이제 적절하지 않고 소용도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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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는 엄마 드시라고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요리했다. 저저번 주에 요리해드렸더니 참 맛있게 드셔서 '왜 진작 자주 안 해드렸을까' 반성 했다. "오늘은 저번보다 면이 덜 삶겼네.."하면서 잘 드신다. 소소한 행복.
나는 행복은 개별성과 구체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 정의, 평등, 평화 등 최상위 레벨에서 압축된 추상적 개념들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 한다. 대신 나는 삶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조각들에서 감동을 받는다. 삶의 순간들, 모르고 지나가면 평생 모를지도 모를 그 작은 순간들. 나는 왜 여행할 때 가장 행복했다고 느끼는가. 그 작은 순간들로 가득 찬 시간 구간을 지나왔으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작은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하지만 내가 여행가의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일상'은 내 삶의 70%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놀랍고 행복하고 깜짝 놀라는 순간이 아니라, 평온하게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그 일상에서 작은 순간들을 찾지 못한다면, 도대체 언제 행복해지려고 다들 아둥바둥 사는 것일지..
그 반대도 가능하다. 불의, 전쟁, 불평등, 증오, 등 추상적 개념에는 익숙해진 게 우리 현대인들이다. 심지어 미디어 커버리지의 폭력성과 선정성도 매우 높아져서,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뒤돌아 보면, 내 주위에 참 많은 불의와 불평등, 증오가 산재해있다. 그냥 모른척, 혹은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내 주변이나 나에게 닥치면, 이제 그 불행의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불행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알고있었다면, 이제는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이다. 불행의 당사자-되기.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만든 지옥에서 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생각 도식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요즘 좋은 소설을 읽기를 갈구하나보다. 추상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별자의 삶, 행복, 불행. 그 감정의 심연. 그런 것들을 읽고 간접 경험하길 원하나 보다. 그래서 정치나 사회 구호들이 꼴도 보기 싫은 것 같다. 개별자가 아니라 끝없이 추상화하는 과정이 정치이므로, 문학과 정 반대의 스펙트럼에 있는 종류의 일들이다. (이건 내가 생각한건 아니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그의 책에서 한 말)
조용히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 이번 가을에는 중요한 의사결정도 해야하지만, 그 의사결정의 노예는 되지 않기를.. 그 중간에도 삶을 피부로 느끼고, 살고, 살아가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