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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

잠, 소소함, 독서, 행복

by 주말의늦잠 2015. 9. 5.



  오늘은 잠을 정말 늘어지게 잤다. 지난 주말에도, 지지난 주말에도 늦잠을 일부러라도 자면서 잠을 보충하려고 했지만 오늘은 신기록을 수립했다. 오후 2시. 솔직히 어제는 몇 시에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일부러 잠을 보충하려고 늦잠을 계획하는 날은 명확한 꿈을 꾼다. 오늘도 눈을 뜨고 꿈에 취해 몇 분간 헤롱거렸다. 


  나는 잠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잠이 없기도 하다. 편안한 분위기 (내 침대, 밤 시간, 따뜻한 차 한잔과 책 혹은 라디오)에서는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는데, 불편한 분위기에서는 잠을 못 잔다. 20대 후반으로 들면서 공간적 불편함에의 반응도가 민감해졌다. 그래서 저번에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14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동안 뜬 눈으로 고된 비행을 하기도 했고, 버스, 지하철에서는 졸지를 '못'한다. 밥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도, 옛날에는 식곤증 탓에 커피를 들이켜야 했는데 요즘은 커피 없이도 잘 견딘다.혼자 있지 못함을 거북스럽게 느끼게 된 건가, 해서 걱정도 된다. 이렇게 민감해서야.. 


  8월 부터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게 된 까닭에 책도 많이 읽지를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독서를 시작하면서, 가나에 있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집어들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이 블로그에도 감상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오늘 '중년기'의 이야기를 읽는데 역시 유아기와 청년기를 읽을 때 보다 반응이 더 잘 온다. 몇 구절 인용.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사람들이 창조적인 성취를 해내는 것은 대부분 30대 때이다. 에드가는 말했다. '25세에는 누구나 재능이 있다. 50세에도 그 재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31세에 톨스토이는 말했다. '우리 나이가 되고서, 머리를 굴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 자체를 통해서 불현듯 이제는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힘들고 또한 헛되었다는 것을 깨치는 순간, 아울러 고민인 듯 끔찍하게 여겼던 노동과 노력이 어느덧 인생의 유일한 요소가 되었음을 깨치는 순간, 모색과 번민과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한탄 같은 젊음의 특징들은 이제 적절하지 않고 소용도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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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에는 엄마 드시라고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요리했다. 저저번 주에 요리해드렸더니 참 맛있게 드셔서 '왜 진작 자주 안 해드렸을까' 반성 했다. "오늘은 저번보다 면이 덜 삶겼네.."하면서 잘 드신다. 소소한 행복. 


  나는 행복은 개별성과 구체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 정의, 평등, 평화 등 최상위 레벨에서 압축된 추상적 개념들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 한다. 대신 나는 삶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조각들에서 감동을 받는다. 삶의 순간들, 모르고 지나가면 평생 모를지도 모를 그 작은 순간들. 나는 왜 여행할 때 가장 행복했다고 느끼는가. 그 작은 순간들로 가득 찬 시간 구간을 지나왔으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작은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하지만 내가 여행가의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일상'은 내 삶의 70%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놀랍고 행복하고 깜짝 놀라는 순간이 아니라, 평온하게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그 일상에서 작은 순간들을 찾지 못한다면, 도대체 언제 행복해지려고 다들 아둥바둥 사는 것일지..


  그 반대도 가능하다. 불의, 전쟁, 불평등, 증오, 등 추상적 개념에는 익숙해진 게 우리 현대인들이다. 심지어 미디어 커버리지의 폭력성과 선정성도 매우 높아져서,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뒤돌아 보면, 내 주위에 참 많은 불의와 불평등, 증오가 산재해있다. 그냥 모른척, 혹은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내 주변이나 나에게 닥치면, 이제 그 불행의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불행이라는 개념을 추상적으로 알고있었다면, 이제는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이다. 불행의 당사자-되기.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만든 지옥에서 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생각 도식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요즘 좋은 소설을 읽기를 갈구하나보다. 추상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별자의 삶, 행복, 불행. 그 감정의 심연. 그런 것들을 읽고 간접 경험하길 원하나 보다. 그래서 정치나 사회 구호들이 꼴도 보기 싫은 것 같다. 개별자가 아니라 끝없이 추상화하는 과정이 정치이므로, 문학과 정 반대의 스펙트럼에 있는 종류의 일들이다. (이건 내가 생각한건 아니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그의 책에서 한 말) 


  조용히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 이번 가을에는 중요한 의사결정도 해야하지만, 그 의사결정의 노예는 되지 않기를.. 그 중간에도 삶을 피부로 느끼고, 살고, 살아가는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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