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속을 걷다

1984 - 조지 오웰

by 주말의늦잠 2015. 2. 27.



1984(한글판 영문판)

저자
조지 오웰 지음
출판사
온스토리 | 2013-05-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온스토리 세계문학 시리즈, 그 열 번째 작품 《1984》 《동물...
가격비교


간만에 고전을 읽으려고 책장을 살펴보다가 눈에 띈 1984.

게다가 한글판, 영어판이 함께 있다. 그래서 이왕 읽는거 원문으로 읽었다. 

1984라고 하면 보통 빅 브라더를 떠올릴 것이다. cctv나 intelligence agency 논란이 일면

반드시 나오는 유명한 구절.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깨알같은 펭귄의 1984 표지.ㅋㅋㅋㅋ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 Oceania는 완벽한 전체주의 세계이다.

개인성의 몰살과 빅 브라더 및 당에 대한 완벽한 복종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는다.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의 슬로건.


전쟁은 평화. WAR IS PEACE.

자유는 속박. FREEDOM IS SLAVERY.

무지는 힘. IGNORANCE IS STRENGTH.


당이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은 '언어'를 제한하는 것이다.

오세아니아에서는 Newspeak (신어)가 공용어로 쓰이는데, 이는 Oldspeak (구어; Standard English)과 대비된다.

언어가 없으면, 깊은 생각이나 개념화, 비판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지배층이 생각하는 '이단적인 사상 (자유, 민주주의, 사랑 등)'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Newspeak의 목적이다. 소설 전반에 이 Newspeak이 많이 쓰이고 있고,

소설의 마지막 Appendix에는 '신어의 원리'도 알아볼 수 있다.


-


이렇게만 들으면 황당무계한 소설 같지만, 조지 오웰이 틈새없이 축조해낸 이 세계에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무지는 힘, 이라는 슬로건은 합당하다.

1984년 세계는 3개의 초강대국 (Superstate)으로 나누어져있다. OCEANIA. EURASIA. EASTASIA.

자본주의의 몰락 후에, 세계는 끝없는 전쟁 끝에 극단의 전체주의 국가 3개로 나누어졌고,

이 세 나라간의 힘의 균형은 완벽하기 때문에, 조지 오웰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Inconquerable한 상태.


조지오웰이 이 소설을 쓴게 1948년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냉전의 첨예를 달리던 시절이다.

그런만큼 오세아니아의 국가체계와 운영방식 및 극단의 전체주의는 당시 공산진영의 전체주의,

즉 구소련을 떠올리게 한다. 아시모프가 이 소설을 폄하하면서, '냉전에 편승한 소설'이라 했다던데

정말이다. 읽으면 읽을 수록 구소련, 구 동구 전체주의 국가들, 그리고 북한이 떠오른다.


특히 '개인성 Individuality'의 몰살과 '집단주의 Collectivism'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내가 소설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당의 주적으로 몰린 Goldstein의 금서 The Book의 챕터 3이었다.

주인공은 The Book의 챕터 1과 3만 읽어주긴 (그것도 발췌) 하지만 ...

조지 오웰이 구 소련을 관찰하며 (?) 그 전체주의의 양상을 극단으로 밀어부친 사회의

논리구조가 딱딱 들어맞는 걸 보면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영속적인 전쟁상태. 이 현대전의 목적은 전반적인 삶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서 공산품을 소진하는 데 있다.

왜? 사람들이 읽고 쓰고 스스로 생각할줄 알고, 안정된 생활에 여가까지 누리게 되면 조만간

소수 특권층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반동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사관은 상층, 중층, 하층계급이 인류가 존속한 이래 이름이나 범주만 바꿔달았지,

끝없이 서로 권력다툼을 하며 발전해가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하층은 언제나 하층이다. 항상 상층과 중층은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권력다툼을 벌인다.


그래서 1984 오세아니아의 지배층은 이 권력다툼을 끝낼 전략을 개발하여 영원한 지배를 하게 된다.

그 전략이 바로 개인성의 완벽한 몰살, 끝없는 전쟁을 통한 평화, 그리고 이중사고 DOUBLE THINK와 NEWSPEAK을

통한 언어 통제. 당과 지배층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언어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소거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포인트. 바로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도 지배한다는 것.

당은 1분 1초 간격으로 역사를 새로 쓴다. 당과 빅 브라더가 전지전능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끝없이 새로 쓰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


흥미로운 질문을 많이 던져주는 소설이다. 

종국에 결국 주인공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상징적인 인류의 소멸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디스토피아적 결말.


질문들, 자유. 평화. 사랑. 배움.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들 역시 인류가 '만들어 온' 것이 아니던가?

만약 인류가 과거의 어떤 시점에 삐끗 길을 다르게 돌아 전쟁. 증오. 전체주의. 무지 등의 가치가 최고인

세계를 만들어 냈다면? 정말 그 가치들은 '좋다'고 받아들여지고 국가 전체적인 세뇌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바로 옆에 '북한'의 그림자가 스멀거린다.


옆 집이 날 감시하고, 가족이 날 감시하는 공동 집단 생활.

주체사상이 종교이자, 진리이자, 선이자, 최고의 가치인 국가.

우리는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세뇌가 가능하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그들은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내가 북한에 태어났다면 역시 그 세계속에서 내가 교육받거나, 제한당한 정보를 사실이라 '믿으며'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1984의 세계가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1984가 전체주의의 양상의 최고의 극단으로 몰고 간 세계관의 전형을 보여줄 때,

우리 사회 속 전체주의는 어떠한가?

나는 너무 쉽게 전체와 나를 동일시 하진 않는가?

국가권력이 '공공선' 및 '국가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의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침해할 때, 나는 너무 쉽게 침묵하지는 않는가? 그 침해가 너무 당연시 되지는 않는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전체주의에 정말 쉽게 빠질 수 있는 역사를 걸어왔다.

가치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생각하면 된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악은 평범하다. BANALITY OF EVIL.

우리 누구나 내 이익을 수호하고, 임무를 완수하고, 좋은 시민이 살아가는 동시에,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세지를 던져준다.



우리 속의 전체주의. 

2014년 한국에 사는 시민 중 하나로써, 1984의 완독 후질문과 한숨이 끝없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