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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百의 그림자 - 황정은

by 주말의늦잠 2015. 10. 7.



백의 그림자

저자
황정은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0-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폭력적인 이 세계에서 그림자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쓸쓸하고...
가격비교



가마와 가마와 가마는 아닌 것

입을 먹는 입

정전

오무사

항성과 마뜨료슈까


-


.. 총 7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 하지만 총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경장편.

그림자가 일어서는 세계. 그 곳에서는 존재가 위태로울 때, 살아갈 이유가 희미해질 때,

힘들고 힘이 들어 그림자마저 옅어질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사실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나에게는 오히려  세계에 대한 조용한 반항으로 느껴진다.

특히 작고 오래되고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때려 부수는 것이 미덕으로 생각되는 이 도시, 서울에 대한, 반항.


-


숲에서 길을 잃으며 시작하고, 한 섬의 어둠 속에서 다시 길을 잃으며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

반드시 숲이나 섬, 어둠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상정하지 않아도, 나는 가끔 모두가 길을 잃어버린 듯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돈과 물질과 발전과 자본이 알파요 오메가가 된 이 세계는,

마치 작고 소중한 것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는 소설속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어, 작가가 공을 들여 여러번 묘사하는 작은 전구가게 '오무사'의 주인 할아버지.

전구 10개를 사면 11개를 넣어주고, 20개를 사면 21개를 넣어주는.

멀리 발걸음 한 손님이 가는 길에 전구가 하나 깨지면 다시 발걸음을 할까봐, 넣어주는 그 엑스트라 전구 하나.

그 조그만 마음씀이 하나에 내 마음 속 전구가 켜지는 것만 같다.

황정은의 소설은 읽고 나면 길거리를 살펴보게 된다.

거리의 일상적인 불행과 누추함, 그곳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된 길이 있었을지 상상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는 그 일상 속에 이야기가 있고, 소설이 있다.


-


그리 놀랍지 않게도 (?)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신형철님이 작품해설을 쓰셨다.

읽자마자 크게 공감했던 구절 인용.


  먼저 현실이 있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공간과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어딘가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 이것보다 더 자명한 사실이 있는가.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꽤 어리석은 존재라서 한번 자명하다고 판단하면 그것에 관해 다시 생각하지를 않는다. 사람들이 말과 글에서 '현실'이라는 단어를 무신경하게 사용하는 바로 그 순간, 그 말과 글은 현실과 차갑게 무관해진다. 현실과 직면하지 않기 위해 현실이라는 말이 필요했다는 듯이 말이다. 문학의 할 일 중 하나는 우리가 현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명함에 관한 그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일이다. 이런 공간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 그래도 실감하게 하고, 나의 공간과 삶이 소위 현실이라고 하는 것과 분리돼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이이다.


백의 그림자는, 이 현실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와 회피를 알아차리게 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소설이다.

문학의 할 일 중 하나를 해내주어서 감사하다.


오늘 어디선가 끝이 팔랑거리는 그림자를 하나 본다고 해도 그리 놀라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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