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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시아로 온 결정에 대하여 최근 캄보디아의 한 국제기구 사무소로 이직하는 결정을 했다. 사람은 의사결정을 하는 순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기준이 가장 잘 드러난다. 이 결정은 쉬웠지만 동시에 쉽지 않았다. 말라위에서의 1년 7개월 동안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친구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쌓았고, 그 중에는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라위 파견 시, '내가 여기서 6개월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 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임지라서 힘들었지만, 아무것도 없었기에 사람과의 유대감 (우정, 사랑..)이 더 중요하고 그렇게 쌓였던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요인을 상쇄한 것은, 몇 년전부터 아시아로 pivot하기를 원했던 나의 전체적인 커리어와 삶의 지리적 방향성, 한국 집과 가까움 .. 2023. 8. 5.
인생을 계획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조직들은, 팀들은 그리고 사람들은 계획을 한다. 연간계획, 2개년 계획, 5개년 계획, 10년 계획.. 중국의 공산당은 100년 계획을 짠다지? 개인의 인생도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달리 보인다. 부모에게 의지해서 교육과 학습을 통해 '어른'이 되는 어린이 시기, 10대를 지나 보통 20대부터는 경제활동을 시작하며 어느정도의 독립을 한다. 한국은 비싼 거주비나 다양한 사회적 팩터로 독립의 시기가 보통 결혼의 시기가 된 것 같지만, 어쨋든 20-30대 때가 되면 자신의 삶과 경제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나는 학사에 석사까지 하고 그 후에 UN volunteer 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실제 경제활동은 20대 중후반에야 시작했다. 그리고 30-40대가 되면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선택을.. 2022. 12. 23.
시간 관념에 대하여 저번 주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일한 햇수가 5년하고도 5개월이 넘어가더라. 여기서는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일하는 방식 등이 참 다른데.. 아주 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간관념이다. 석사 코스웍 할 때 개발학에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비교경제학인데, 서로 다른 대륙이나 국가 들의 개발 궤적을 서로 비교하면서 국가 부의 성장과 경제/ 사회 개발의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학적으로 따져보기도 하고, 지표를 정해서 통계적으로 풀기도 한다. 이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200년 걸린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한국은 30-40년만에 해냈는데 그게 어떤 이유일까.. 운운하는 주제이다. 이 때 내가 기억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 2022. 12. 14.
건강에 대하여 나는 일신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 식습관 속에서 단백질이나 미네랄을 많이 섭취하려고도 하고 (음주는 좀 하지만.. 흠흠), 운동도 일주일에 거의 5-6번 유산소와 근육운동 번갈아 하고있다. 몸이 어디 아픈 신호가 있으면 바로 스탑하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감염증이나 특정한 병이 걸리면, 그것에 대해 끝없이 구글링 하고, 논문까지 보면서 어떻게 예방해야하고 어떻게 처방하는지 알려고 노력한다. 약간 건강염려증 전조 환자다. 그런만큼, 평생에 남이 잘 안가는 개도국, 아프리카 나라들을 다니면서 큰 병 한 번 안나고, 말라리아도 안 걸리고, 코로나도 안 걸리고, 오히려 필드에 가면 생기가 도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나는 체력부심이 좀 있다. 건강부심이랄까. 그런데 얼마 전에 새로운 경.. 2022. 9. 2.
글로벌 노마드에 대하여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바뀐 것 중 하나가 바로 일을 하는 '장소'에 대한 관념이다. 주로 지식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겠으나,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노동을 통해 산출물을 내고, 그 산출물에 대한 댓가로 급여를 받는 삶. 글로벌 노마드. 어디에선가 듣기로는 특히 컴퓨터 공학이나 코딩 등 실제로 자기 홀로 산출물을 내는 영역의 사람들이 동남아의 어느 섬에 모여서 일하는 그런 글로벌 노마드 HQ(?)같은 동네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커리어를 해외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외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로벌 노마드라는 컨셉이 내 삶에 체화되어 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주로 사람들은 어떤 곳에 이민을 가거나, 특정 시간동안 주로 선진국의 어떤 도시에서 일을 하고 살아.. 2022. 5. 5.
성장 vs 관계, resilience 에 대하여 우선순위와 목표에 대한 생각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라면 아마 10대는 수능 점수를 위한 질주의 여정이었을 것이고, 20대는 학점과 취업을 위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좋은 점수,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이렇게 계급도와 등수가 정해진 사회에서 어떤 한 곳을 위해 달려가는 것은 오히려 쉬운 것일수도 있다. 내가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사회가 목표를 정해주고, 내 주변 모두가 그 목표를 달려가는 나를 도와준다. 그런데 30대가 되어 갖게되는 것은.. 더 이상 사회와 내 주변의 peer group이 정해주는 목표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 모두가 너는 대단해, 잘하고 있어, 멋져, 이런 시기에 그런 멋진 커리.. 2022. 4. 4.
말라위 정착기 & 두서 없는 커리어 이야기 말라위에 온 지도 벌써 2개월이 되어간다. 2개월이지만 정착에 수반되는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어서, 이미 오래 있었던 기분이다. 여기에서 내가 아직도 적응하기 굉장히 힘든 부분이 바로 전력수급난이다. 지난 달 말 정도에 말라위 남부 지역에 허리케인 Ana 때문에 수해피해를 입어서 80명이 넘는 수해민이 발생하고, 남부 지방의 주요 전력 발전소가 데미지를 입는 바람에 현재 말라위 전역의 전력 수급은 보통 케파에서 70%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한전같은 곳이 말라위의 에스콤 (ESCOM, Electricity Supply Corporation of Malawi Limited)인데, 이미 몇 주간 Load shedding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아마 한국이나 기타 선진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전혀 모.. 2022. 2. 15.
말라위 구석에서의 지적인 대화 말라위에는 이제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었다. 약 3주 전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낮에는 체감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고 서하라 이남의 햇빛이 쨍쨍하여, 지대가 꽤 높은 말라위도 이렇게 덥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제는 저녁에는 가디건을 입어야 할 만큼 선선한 날씨고, 오전에는 해가 쨍하다가도 오후에는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날들의 시작이다. 한참 집과 차를 구하면서 물질적인 시간은 많지만 마음의 시간이 없었다. 한 2주정도? 오늘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 (말하면서도 웃기다)인 A와 만나기로 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처음 갔던 꽤 posh한 카페에 테이블이 다 꽉 차 있어서 가까운 곳으로 간 카페에서 텍스-멕스 보울과 로즈마리가 인퓨즈 된 진토닉을 곁들어 먹었다. 텍스-멕스 보울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2022. 1. 9.
뭔가를 송두리째 상실하는 경험에 대하여 이 블로그에서 손을 뗀 시간이 꽤 오래 되는 만큼, 그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코로나19를 겪으며 더 많은 삶의 출렁임을 느낀 이들도 훨씬 많을테지만..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도는 상대적인 것이다. 누군가가 봤을 때 '에게.. 뭐 저런 걸로 우울해해?', '뭐 죽을 일도 아닌데...' 하는 상황도 그 개인에게는 삶에서 시계추의 끈이 툭 떨어지는 것처럼 큰 상실과 충격의 순간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에게 지난 2021년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방정식이 산산히 부서지고, 그리고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한 한 해였다. 내가 30대, 40대, 50대를 넘어서까지도 당연히 가져가고 부드럽게 우상향할 거라 생각했던 삶의 특정한 부분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처음에는 이.. 202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