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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유령퇴장 - 필립 로스

by 주말의늦잠 2015. 3. 13.




유령 퇴장

저자
필립 로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8-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책을 읽는/글을 쓰는 사람들인 우린 끝났어. 우린 문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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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Exit Ghost 표지.



  

  필립 로스라 역시 재미있지만, '에브리맨'이나 '울분' 처럼 술술 읽히진 않았다. 우선 화자가 꽤 이름이 난 노작가로 설정되어 있는데, 거의 죽음에 다다른 늙은 화자가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에브리맨'과 유사하다. 하지만, '유령퇴장'에는 뭐랄까, 이야기로서의 소설 뿐 아니라 소설 작법이나 작가의 '소설관'도 엿볼 수 있다.


  세상과, 사람과 단절된 채 몇십년을 살아온 노작가의 은둔. 그 은둔의 저변에는 테러리즘, 유다이즘, 미국정치 및 참여 등의 굵직한 키워드들이 포진해 있다. 어느 날, 노작가는 아주 즉흥적인 감정에 휘말려 그 은둔생활을 깨뜨리고 다시 인간사 뉴욕의 한 복판으로 이사한다. 그러면서 그의 과거가 자신과 함께 늙어 나타나고, 또 새로운 현재는 거스를 수 없는 활력으로 그를 덮친다. 이미 '생식능력을 잃어' 반죽음 상태의 늙은 화자를 한 축으로 같은 늙음의 범주 (죽음을 포함하여)에 있는 인물들. 르노프, 에이미, 조지. 그리고 젊음과 활력, 에너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 제이미, 클리먼, 빌리. 이미 늙어버린 범주에 있는 인물들은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말을 할 수 없거나 (죽었으므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젊음을 상징하는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열정과 분노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부시 주니어가 2번째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늙음과 젊음의 반응은 얼마나 상이한가. 


  그러나 그 늙음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화자 주커먼. 그는 속절없이 죽음으로 잡아끄는 신체시계를 거부해버리는 그 단 한번의 즉흥적 순간을 맞이하는데, 그 순간은 바로 젊고 매력적인 여성 제이미에게 홀딱 빠져버리는 순간이다. 그는 르노프의 과거와, 자신의 과거를 엉뚱하게 곡해하고, 비평하며, 까발려버릴 당찬 젊은이 클리프에 맞서 싸우는 (혹은 싸우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끝없이 제이미와의 대화를 상상한다. 물론 이 상상 대화의 내용은 '그와 그녀'라는 소설이고, '유령퇴장' 속의 작은 미니 소설로 존재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주커먼은 절대로 클리먼의 그 젊음과 무모한 열정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젊은은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활력으로 살아가는 반면, 늙음은 무한하게 소멸시키는 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그래서, 르노프의 전기 역시 완성될 것이다. 그 전기에 기록되고, 곡해된 '실수'나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르노프를 다시 읽고, 재해석 할 것이다. 물론 전기의 내용에 따라 이미 형성된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이렇게 거부할 수 없는 활력의 물결 앞에서, 주커먼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그녀'를 완성하는 일이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은 바로 '그와 그녀'의 결말이다. 유령은 퇴장한다. 현실과는 다르게, '그와 그녀' 속의 제이미는 주커먼의 호텔로 곧 온다고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다. 퇴장한다.


  그렇다면, '유령퇴장'은 뭘 말하는 소설인가? 늙으면 떠나라는 그 명백함을 이야기하는 건가? 소설 맨 앞장을 다시 펼친다. 딜런 토마스의 시 구절이 있다.



"죽음이 너를 취하기 전에, 오 이것을 되찾으라.

- 딜런 토마스, 뼈에서 살점찾기"



  죽음이 늙음을 취하기 전에, 그는 퇴장해버렸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퇴장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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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퇴장'은 필립로스의 '주커먼 시리즈'의 맨 마지막이다. 나는 사전 지식이 없어 끌리는 대로 도서관에서 집어오는 바람에, 주커먼 시리즈의 맨 마지막부터 읽게 된 셈이다. 하지만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 생각한다. 마치 끝을 알고 2번째 보는 영화처럼, 더 상세히 읽힐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