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네 구립 도서관에 다닌다. 집에 있으면서 처지고, 부유하는 기운을 조금 차린다. 필립 로스를 조금 읽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을 나오니 칼바람이 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 어제 따뜻해서 얇게 입고 나온 탓으로 - 첫번째 횡단보도를 기다려서 건넜다. 두번째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이었다. 뚝방길 위로 지하철이 지나는 세번째 횡단보도 주변에 경찰차와 엠뷸런스가 요란하게 등장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가던 내 눈에, 도로 한 복판에 쓰러진 청년 한 명과 앞부분이 부숴진 오토바이가 보인다. '사고가 났구나!'
나는 사람이 다치거나, 피가 나는 상황은 잘 보지 못하는 터라 일부러 외면하려 애쓰지만, 저절로 호기심이 나의 고개를 그 방향으로 돌린다. 보행자 빨간불 신호에 기다리며 그 사고상황을 지켜보는데, 파란불 신호가 걸린 차들도 한 번 구경하겠다고 도로의 흐름이 지체된다.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쯧'하고는 차를 몰아 휑 가버린다. 드디어 보행자 파란불 신호가 들어왔다. 응급대원들이 나와 도로에 드러누운 청년에게 질문을 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상황에서도, 파란불에 보행자를 무시하고 머리통을 들이미는 차들이 정말 꼴사납다.
바람결이 칼이 되어 귀를 스치는 그 차가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무서웠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부근에 내동댕이 쳐진 오토바이 뒷 켠에는 '피자OO'상표가 붙은 박스가 있다. 그 청년은 피자 배달 중이었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복합적인 감정이 갑자기 이렇게 불어닥친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피자배달을 하던 청년의 생사가 갈리던 순간에, 내가 도서관을 나와 차가운 바람에 맞서며 집으로 종종 걸어가고 있었구나. 그 청년의 어머니는 오늘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얼마나 혼비백산 하실지.. 내팽겨쳐진 오토바이의 '피자OO' 상표 따위에 그렇게 눈물이 나다니.. 내가 약해진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강한건지. 부쩍 눈물이 많아진 탓인지, 눈물이 많아질 상황이 많아진 탓인지.
모를 일이다.
- 3월,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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