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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

길거리의 사람들

by 주말의늦잠 2015. 4. 4.


  건널목에 파란불 신호가 들어와도 자기 먼저 가겠다고 차를 들이미는 옆모습이나, 뒤에 오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거운 유리문을 휙 놓아버리고 건물로 들어가는 뒷모습, 부딪혀도 인사나 미안한 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들이며, 물건을 환불해내라는 당당한 반말의 쩌렁쩌렁함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거슬린다. 마음을 까끌까끌하게 만든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점점 더 인구의 밀도가 높은 장소에는 가기가 싫은 까닭이다. 주로 지하철, 주말의 상업 거리 (강남, 홍대, 이태원 등), 카페, 쇼핑몰.. 이런 곳들이다. 사실 이 장소들은 서울 거주민으로서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장소들이다. 그런데 이런 장소들에 항상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의 비매너 및 무의식적인 무례함과, 그것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태연함이 나를 질리게 만든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 초면에 반말을 하는 것 또한 꼴사납다. 젊은이고 나이들은 이고 분별할 것 없이 주로 서비스업 하는 사람들에게 볼썽사납게 구는 듯 하다. 웃긴 것은 그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고 중년에 들어선 아줌마, 아저씨들로 보인다는 점이다. 거대한 조직 혹은 시류의 흐름에서, 소위 을(乙)과 을의 부딪힘과 마찰과 다툼이란,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 엉뚱한 예이긴 하지만, 인터넷 서비스 기사들과 고객들의 욕설이 들리는 싸움이 그런 종류의 것이다. 한국 인터넷 시장을 3등분하여 갈라먹는 기업의 망 자체가 완전하지 못 하거나, 서비스 효용성이 느린데, 기업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장애를 서비스 기사에게 돌린다. 서비스 기사가 몇 번을 요청받아도 만족 시정이 되지 않으면, 그의 인사평가에 불이익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복 기사'라는 명함이 무색하다.


  그런데 무색한게 너무 많아서 무색해지는 게 무색할 지경이다. 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과잉 친절로 무장하고 있을 때가 많으며, 물건에 존칭을 써가면서 까지 고객이 '왕'인양 연기해야 한단 말인가.. 왜 야근이 일상이 되버렸단 말인가.. 왜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숨죽여 이리도 처량하게 뒷방 신세를 면치 못 하게 되었는가. 자본주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입안하고 적용하는 건 사람이다. 그 사람들의 유기적인 관계가 사회다. 그곳에 결정권과 행정권을 가진 주체가 정부다. 그 정부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는 시민들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본의 논리가 사회와, 정부와, 시민과, 시장과, 문화의 큰 형님이 되어버린 듯 한 이 곳은 아무래도 기본을 잃은 것 같다. 앞서 말한 기본적인 상대 인간에 대한 매너도 갖추지 못 한 이들이 수두룩 하단 말이다. 


  매너가 (철컥) 사람을 (철컥) 만든다 (철컥). 킹스맨이 19금 딱지를 달고도 한국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이뤘다는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답니다. 존중. 배려. 그게 사람을 만드는 거라고요.



- 4월,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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