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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

질문도 폭력이 되는 팍팍함

by 주말의늦잠 2015. 4. 23.



  "이제 졸업하고 뭐 할거야?"라는 물음표는 학사졸업생이든 석사졸업생이든간에 수십번은 들었을 질문이다. 물론 명절이다, 뭐다해서 질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한둘이겠냐마는. 어제 비근한 예를 경험했다. 출근하는 사무실의 A가이 B에게 물었다 (A가 B보다 어른이다). "그럼 00씨는 졸업하고 뭐 할거야?" 전혀 악의없는 질문이다. 정말 궁금할 수도 있고, 아니면 할 말이 없어 생각나는 바를 물어본 것일 수도 있다. B는 심드렁한 얼굴로 "모르겠어요."하고 단칼에 대답해버리는 것이다. 나중에 A가 나에게 지나가듯이 하는 말이, "B씨는 매사에 별로 열정이 없나봐. 원래 자기 앞길은 딱딱 계획하고 그러지 않나?"하며 또 자기확인의 물음표를 나에게 던지신다.


  이 짧은 일화의 공기 속에서 나는 A의 어리둥절함과 B씨의 심드렁한 기계적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읽었다. 그리고 사실 B씨에 공감가는 게 사실이다. 나는 B와 나이대도 비슷하고, 어쩌면 상황도 비슷한 같은 세대로서 같은 걱정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결은 질문도 폭력이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실직하셨는데, 어른이 "어, 그래 요즘 아버지는 뭐 하시니? 아직 그 회사 다니시니?"하면 머릿 속으로 온갖 생각이 5초만에 생선떼 지나가듯 챠라락 스쳐간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진로를 정해야 하는지, 정해도 계획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대의 아이들에게 "그래, 이제 뭐 할거니?"하는 질문은 폭력이다. 폭력을 행하려고 해서 하는 악한 의도가 아니라, 세상살이의 팍팍함이 만드는 그런 무고한 폭력이다. 


  누군가 그랬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게 폭력이면, 이 세상에 폭력 아닌게 어디있냐고. 또 누군가가 그랬다. 맞다고. 이 세상에 폭력 아닌 게 없으니, 폭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보다 모든 폭력을 인지하며 괴로워하는게 더 도덕적이라고. 


  살아가면서 우리 어른-아이들이 배우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선과 악, 폭력과 비폭력의 이분법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개인들이 만드는 비합리적인 사회, 조리있는 이들이 내뱉는 말로 비조리의 성토장이 되버리는 현장, 순수한 의도의 제스쳐들이 폭력이 되어버리는 처연한 상황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이런 것들은 이분법의 문법을 배우며 자란 이들에게 문법 상의 예외 (Exceptions) 정도로 여겨지겠으나, 그들이, 우리들이 이분법을 배우며 자랐건 말건 그게 현실이다. 악해지려고 악을 행하는 자가 없는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신이 아닌 인간 중 그 누가 면죄부를 갖겠는가. 그러므로 폭력을 목격할지어다. 모든 것이 폭력으로 화하는 이 팍팍함을 살아낼지어다..


- 4월,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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