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아지, 뽀송이.
나의 늙은 강아지, 뽀송이를 이제 '그'라고 지칭한다. 그의 눈 속에는 항상 쳐다보는 그 사람이 온전히 담겨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필요없고, 그냥 나만 있으면 된다는 그 애절함, 안절부절함, 그리고 애정. 어쩌면 개의 애정을 논한다는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하지만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의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거의 9년간을 우리 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명실공히 우리 가족의 다섯번째 일원이다. 누가 현관문에 들어서든지 가장 먼저 달려가 반기는 게 그이고, 항상 사람이 밥 먹을 때 자기도 따라 밥 먹는 습관이 들었다. 내가 나갈 채비하는 건 어찌나 잘 눈치채는지, 그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화장을 끝내고 방을 나설때면 뒷통수가 따갑다. 어딜가냐고 묻는 것만 같은 눈길이다.
그도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비록 우리 집과 근방의 영역에 제한된 생활이라 할지라도. 한 때는 동네 개들을 짖어서 제압하던 어린 강아지의 시절이 있었다. 눈은 더 똘망똘망 했고, 물기로 축축한 코는 항상 번들거렸다. 자꾸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습관 때문에, 거기서 뛰어내리느라 앞발을 조금 절었던 적도 있었다. 겨울에는 목감기를 앓는다. 개의 기침소리로 온 식구가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밤새 켁켁대는 기침소리로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자던 어느 날은 그가 정말 미웠을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 홍역앓이를 했던 모양으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부터 이빨이 많이 상해있었다. 노견이 된 그는 이제 이빨을 거의 다 잃었다. 자전거 사고로 고관절 3개가 부러져서 나도 못 해본 깁스를 한 달 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몸에도, 그는 여전히 눈 속에 우리를 온전히 담아내고, 온전히 짖어대고, 온전히 살아간다.
그는 절대 맨바닥에 앉지 않는다. 이불이 깔려있으면 그 위에 앉고, 이불 위에 베게가 있으면 베게 위에 앉는다. 이불도, 카펫도 없는 날에는 누군가 벗어놓은 양말 위나, 발수건 위에 덩그라니 앉아있기도 한다. 늙어가면서 점점 추위를 더 많이 타는 모양으로, 베란다로 비춰오는 햇볕을 받는 걸 좋아한다. 그 햇살은 해가 중천으로 뜨면서 각도를 달리하는데, 그 햇살을 따라 자기도 위치를 옮겨앉곤 하니.. 가끔 보다보면 허! 하고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래도 그가 제일 좋아하는 건 사람 곁이다.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꼭 곁에 있어도 겨드랑이 품, 가랑이 사이, 누운 허리 바로 곁에 조그만 몸을 웅크리고 있는다. 무릎에 놓아주면 세상에 가장 안심한 표정으로 잠을 청한다. 고개를 탁 떨어뜨리는 폼이 한 두번 자본 솜씨는 아니다. 전생에 사람이었을까? 전 주인이 항상 이렇게 무릎 곁에 두고 아기 개를 길렀을까? 아니면 버려져서 자랐을까?
절대 죽을 것 같지 않은 나의 노견, 나의 늙은 강아지, 뽀송이.
나는 눈을 감고도 그가 지금 어디있는지 맞출 수 있다. 내 책상 밑, 내 발 아래 책을 쌓아놓은 높은 면. 항상 우리 발 아래에서 우리를 치켜보며 사는 그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 뒤에 침대 맡에 작은 담요를 깔아놓은 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가 그를 신경 쓰지 않을 때에도, 항상 우리 뒤를 응시하니까. 그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동그란 단추같은 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것만도 같아서 오늘은 그를 더 애정하고 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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