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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by 주말의늦잠 2014. 10. 2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8-08-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깨끗합니다 ///책소개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어느 쪽이 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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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현대 고전 정도로, 읽히고 있는 소설이라고 느껴진다.

그 이유라면, 한 번씩은 다 들어봤을 소설 제목이고 작가도 유명하며

사실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이 없다는 것? 

고전이 다 그렇지 않은가, 유명하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중학교 때 부터 줄창 '권장도서'로 추천은 받았으나 읽어본 적 없는,

그리고 실제로 읽어본 사람도 많이 없는..


뭐 이 소설에 대해서는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대학교 2006년에 사서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둔 기억이 난다.

1판 24쇄인 모양인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 후 마그리뜨의 그림을 커버로 하여

개정판이 나온 듯 하다.


실제로 이 소설은 마그리뜨의 그림과 아주 잘 어울린다.


-


소설에는 4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

어쩐지 소설보다는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는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듣고

어느정도 이해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라면 그 소설 내부의 세계에서 화자가 이야기 할텐데,

이 소설 같은 경우는 마치 쿤데라가 자기 자신과 소설 속의 세계 그 중간 쯤 어디에서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다. 이는 아마, 작가가 아니라면 쉽게 눈치채지 못할 차이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네 명의 개인이 '격동'의 유럽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사건들, 일상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매우 '극'적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과 철학 그리고 섹스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섹스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는지,

눈을 감는지 뜨는지.. 이 모든 것이 각 존재의 심연 속의 생각과 연결된다.


이렇게 모든 인물들 사이의 연결선 속에 섹스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는 소설인데,

90년도 (정확히는 1999년)에 한국대학가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다.

그 당시 학생들은 이 소설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쿤데라는 소설 첫 장부터 자신이 끝까지 밀고나갈 대립적인 개념을 이야기한다.

가벼움과 무거움. 

6세기 파르메니데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은 빛 - 어두움, 두꺼움 - 얇음,  뜨거움 - 참, 존재 - 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무엇이 긍정적인 것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쿤데라는 모든 모순 중 이 모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미묘한 모순이라 

말하며 소설의 세계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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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당 건너편 건물 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아파트 창가에 서 있던 그'

'무엇을 해야만 할지 모른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던 토마스는 이 양극단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선택해야 하고, 욕망해야 하고, 갈등해야 하는 인간상으로 느껴진다.


그는 평생토록 사랑해야 할 한 사람, 테레사와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여성 탐색을 그치지 않는다.

평생을 토마스의 여성편력을 견디며 살아온 테레사가 정치적 이유로

피신해간 작은 마을에서 까지 토마스의 머리에서 풍기는 '여성'의 냄새를 맡으며

크게 낙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테레사였으면 진짜 얼굴을 한 대 갈기지 않았을까....-_-;


어쨋든 각설하고, 토마스가 한 인간으로서 선택해야 할 한 극단 중 하나.

그 극단은 언제나 존재한다. 공산당 정권의 회유서에 사인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테레사를 사랑하지만, 본능대로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할 것인가..

테레사와 사비나는 그의 삶에 있어, 두개의 극점을 표상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화해가 불가능하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운 극점'을.


마치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한계를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 양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인간.

선택을 하고도 항상 다른 극점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가지 못한 길'이 항상 마음에 남는 존재본연의 쓸쓸함.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파르메니데스는 '무거움'이 좋은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쿤데라는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이다'라고 묻는다.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인가,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인가?


-


여담으로,

나는 네 주요인물 중 '사비나'를 가장 좋아한다.

끝없이 호색하는 토마스는 견딜 수가 없고, 또 구구절절히 그를 받아들이는 테레사도 별로다.

프란츠는 잘생기고 몸도 좋은데 찌질하다.ㅋㅋㅋㅋ

사비나는 전체주의, 공산주의, 정언명령의 키치에 대항하는 인물이다.

삶에서 끝없이 복수하고, 그 복수가 바닥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면서도 인류의 보편적인 키치에는 눈물흘리는 인물.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어서 떠났고, 미국으로 갈 수 있었으므로 미국으로 갔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이렇게 제목 자체가 한 등장인물의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것은 사비나 뿐이다.

사비나는 가벼움의 한 축에 서서, 쿨하게 배반의 모험을 감행하는 여성이다.

그래서 그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