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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

갑을관계에 대한 단상

by 주말의늦잠 2014. 11. 24.


나는 대학교 1학년때 단기 알바를 하려고 서울 중심 어딘가의 빌딩으로 간 적이 있다. 아무리 찾아서 못 찾겠어서, 담당자한테 전화를 하니 '이래이래 저래저래로 오시다 보면 가불빌딩이라는 곳이 크게 보여요' 하신다. 그래서 나는 가불빌딩을 찾아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렴풋하게 굴다리를 건너는 데, 갈색 네모 반듯한 빌딩 맨 윗쪽에 '甲乙 빌딩'이라고 세로로 글씨가 써있는게 아닌가?! 그 순간은 내가 찾던 가불빌딩은 '갑을빌딩'이었다는 유레카 모먼트였다는.. 


그 때만 해도 갑을빌딩의 갑을이 도대체 뭔지, 생각도 안 해도 되는 대학 1학년 신분이었으니. 하지만 요즘 내 또래 20대 후반 - 30대 초반의 그냥 '일반적인' 젊은이들을 보면 이 사회의 을 중의 을, 아니 갑을병자무기경신임계의 '계' 대접밖에 못 받는 걸 많이 본다. 슬프다. 자네는 학교를 뭐 그렇게 오래 다녔나? 오늘은 간만에 일찍 퇴근 하지 (시간은 정시퇴근 시간인 6시)? 요즘 야근수당 받고 일하는 데가 어딨나? 놀면서 일하면 회사는 어떻하나 (일년 5일의 휴가를 일컫는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이야기해보게 (창조경제를 위한 베이스 닦기로 보인다). 


사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은 그냥 명목상 있는 제도라는 말도 들었다. 육아휴직을 안 시켜줘서, 일하면서 애를 못 낳거나 혹은 일을 그만두고 애를 키워야하는 현실적인 대안 중에 고민하는 젊은 기혼여성들에게 어떤 이들은 '요즘 여자들은 애를 안 낳으려고 해서 큰 문제야 문제 쯧쯧....'한다. 마치 열심히 도전하고 모험해서 실패하면 바로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져 연명해야하는 구조에서 '아이고 요즘 젊은이들은 저렇게 개척정신이 없어서야....' 하는 사회적 울림을 듣는 듯도 하다. 


우리 세대, 지금 딱 일을 구하거나, 일을 막 시작해서 대리급이 되거나, 혹은 결혼을 해야하고, 이제 아이를 가져야 하는 이 사회 초년생들. 우리가 원하는 건 무슨 거창한 대의적 혁명이라던가 사회적 변환이 아니다. 그냥 내 하루에서, 일은 8시간 하게 해주고, 주말은 쉬게 해주고, 결혼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일상을 살고 싶은 것 뿐인거 아닌가? 


뭐 말하면 입아픈 주제다. 한숨나온다.


- 201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