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적인 생각

고개를 숙여 감사하고, 다시 고개를 들다

by 주말의늦잠 2014. 1. 27.




지난 11개월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 시작과 끝에서, 하루 하루, 매 순간마다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해야할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에서 부터, 고뇌와 방황의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가는 이 시기까지. 밀양과 춘천, 서울을 지나 세계 지도에 발자욱을 찍는다면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의 끝이 가장 멀리까지 닿은 이 아프리카까지. 이 모든 내 생의 순간에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은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가 있어 가능했고, 나의 믿음이 닿은 그 자리가 존재하기에 이루어졌고, 그리고 나를 받쳐주고 지원해주는 기회가 있었기에 귀중한 1년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1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마치 흐름에 따라 두께를 넓혀가는 아코디언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걸어온 시간이 차곡 차곡 접혀 딱 1년의 절대적 시간의 두께의 아코디언. 그러나 그 아코디언을 펼쳐 연주를 하는 순간, 그 차곡 차곡 접힌 시간의 협곡에는 복잡다단한 생의 순간들, 행복하고 우울했던 감정의 파도타기 그리고 배우고 느끼고 마음에 가로새겼던 다양한 가르침과 깨달음이 담겨있다. 처음 3-4개월의 초입은 마치 허니문처럼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일에서, 사람 관계에서 그리고 생활에서 적응하고 흡수하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업무 준비를 하고, 수 많은 회의에 참여하고, 사람들이 일하는 법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던 일터에서도,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하루하루 식사를 하고 일기를 쓰는 일상에서도 동적인 곡선을 그렸다는 기억이다. 그리고 그 후 중반에서는, 이 기억의 파노라마가 아코디언 연주라면 어떤 결정적인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하겠지만, 실제 나의 연주는 하루하루 일과에의 적응, 반복되는 업무와 약간의 나태심 그리고이상과 현실의 타협으로 오히려 잔잔했다. 무거운 관료제와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비효율, 또 해도 해도 조정되지 않는 조정업무들... 



당시 나는 어쩌면 사회생활과 일을 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호기롭게 세웠던 이상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 굽혀져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에까지 이르는 후반부는 개인적인 관점에서든, 유엔 업무의 관점에든 1년 마무리와 다음 1년 계획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순간의 지속이다. 



나는 이 1년이 앞 뒤가 댕강 잘린 아코디언의 시간단위로 묘사했다. 그러나 가나에서 사는 사람들과, 유엔의 개발 및 인도주의 업무, 조정과 합의, 새천년개발목표의 달성과 다음 중장기 계획 등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진행형이었고, 앞으로도 그렇다. 내 개인의 경험치를 높이고, 배우는 것은 이 전체 그림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경험과 배움의 상위 레벨에서 유엔의 업무와 가나의 개발과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의 문제이다. 이렇게 다시 치켜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생각하고, 나의 진로를 생각하고, 나의 발전과 성장을 생각하며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의 기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가치나 잣대는 나의 결정이, 나의 일이 나 뿐 아니라 이 사회와 세계에 – 중장기적으로 미미할 지라도 – 긍정적인 변화와 진보를 일으키는데 기여를 하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인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변화와 진보는 장기적이고, 시간은 무한하다. 주어진 인생의 시간 내에서 유한한 나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데 아프리카 가나에서의 1년은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의 습득 뿐 아니라, 나의 가치와 방향을 재조정하고 더 멀리, 더 거시적인 관점을 갖게 해준 기회였음이 분명하다.




- 1월, 2014년



'일상적인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적 책임감  (0) 2014.03.13
또 하나의 약속  (0) 2014.03.13
병상에서의 5일  (0) 2013.11.20
많은 생각에 앞서,  (0) 2013.10.08
현재의 확실성과 미래의 불확실성  (0) 201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