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보낸 5일.
병상에서 보낸 5일. 병상이라고 하니 뭔가 중병에 걸려 링겔이라도 꽂고 끙끙 앓는 모습이 스치는 듯 하나 사실은 각종 증상 – 두통, 어지럼증, 설사, 기침 그리고 오한 – 이 한꺼번에 겹쳐 평소보다 좀 오래 앓았던 것뿐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잔병치레를 잘 하지 않는 나로서는, 5일간의 ‘병상’ 체험은 아주 오랜만의 경험이다. 먼저 몸이 아픔을 깨달았을 때, 몸 속에 어떤 이항작용으로 인해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는 걸 감지한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느낀 의식은 ‘눕고 싶다’ 였다. 누워서 쉬고, 누워서 회복하고 싶다는 어쩔 수 없는 인간 생존의식의 발로인지, 아니면 그냥 게으름증이 우연하게 시의 적절한 기회를 포착한 것인지 결국 5일간 거의 누워 지냈다. 누워있는 동안 그 동안 쌓아두었던 각종 팟캐스트와 오디오북을 연속으로 – 잠들면서나 자면서나 혹은 깨어 누워있으나 – 주구장창 들었다. 그리고 작가의 세계, 문학작품에 대한 진지하고 또한 가벼운 이야기들, 차분하게 책을 읽어나가는 목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쩌면 나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학소녀에서, 간호사 시절을 지나 결국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가의 꿈을 펼치고 있는 정유정 작가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 역시도 오래 전,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문학소녀였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문학소녀라고 해서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방울을 또로록 흘리는 감수성의 소유자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문학작품을 항상 곁에 두고, 이상한 의무감으로 몇 권씩 읽어가기도 하고, 가끔 책을 덮고 가만히 그 마음의 풍파를 느껴보기도 하던 그런 학생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재산은 내가 수년간 써내려 갔던 유치하고도 찬란한 학생시절의 일기장들인 것 같다. 나와 5-6년을 함께하고 내 동생에게 넘어간 책장 어딘가에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쓴 일기장이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보관되어 있고, 현재 서울의 내 방에는 조금 더 머리가 커서 쓴 일기들, 즉 사춘기와 20대 언저리의 방황의 흔적이 가득한 일기장들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꽂혀있을 테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 서울의 내 방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그 중에는 꽤나 많은 수의 독서일기장도 있었다. 홀연히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사다 준 세계명작들, 비밀의 화원이라던가 폭풍의 언덕 등 (아주 유치한 분홍색 커버로 5학년 용 (!) 이라고 명시되어 있던),을 읽고 내가 글로도 쓰고 또는 그림을 그려서 나의 짧은 감상을 써내려 갔던 그런 기록들이다.
그러므로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꿈은 모든 초등학생들이 꿈꿨던 의사나 대통령 이외에도 소설가, 작가 범주도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생의 흐름이 내가 있는 곳으로 방향전환을 했던가. 왜 소설이나 글 쓰는 일에 대해 더 진지한 방황을 하지 못 했던가. 왜 예술을 한다는 것에는 정확한 지향점을 찾지 못 했던가… 라고 내가 진지하게 내 에고와 토론을 벌였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런 질문을 나에게 처음으로 던져본 5일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어째서 지금 내가 몸담으려 애써왔고, 현재도 애쓰고 있는 이 곳이 나의 커리어의 지향점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부끄럽지만 아주 속물적인 동기에서 시작했음은 분명하다. 스포트라이트, 국제뉴스 그리고 국제기구. 사실 내가 자라난 세대는 처음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 내부에서 국제로 실제적인 눈을 돌리기 시작한 ‘세계화’ 열풍 위에서 교육받았다. 영어가 ‘생존’ 기술이 되는 사회가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그 그리 길진 않은 시간 속에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의 편린이 보인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나는 세대의 대세에 나의 개인적 결정의 흐름을 어느 정도 맡긴 셈이 되는 것이다. 여느 세대의 많은 개인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늦진 않았다. 불가능하지도 않다. 나의 문학적 소망은 누추하고 소박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글로써 뭔가를 표현해내고 만들어내고 싶은 그 열망에 사로잡혀있다. 지금까지는 텍스트를 읽고 소화해내고, 문학작품을 즐기는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그 책장의 반대편에 서보고 싶은 기분이 매우 강하게 든다. 그러나 아직은 문학자산이 너무도 부족하고, 게다가 아프리카라는 공간적 핸디캡까지 처해있다. 한국이었다면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밑줄 긋고 열심히 소화해내고 싶은 이 많은 책들을 그냥 단순히 구하기 ‘불가능’한 곳이 바로 내가 현재 서있는 곳이다. 그러나 ‘궁즉통’이라 했다, 궁하면 통한다. 그냥 하루에 조금씩만 걸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모든 시작에 오도방정을 떨면서 부산을 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라는 시간에서 약간의 공간을 이 새로운 열망에 투자해보기로 한다.
-11월,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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