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 그게 소설이든, 잡글이든, 에세이든, 비평글이든, 학술적인 글이든, 짧은 소회나 아포리즘이든.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확실하게 보장된 얼마간의 시간적 헌신이 필요하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수많은 정보와 의견을 '읽고', '암기'하고 그것이 현실의 올바른 반영이나 혹은 제대로 된 해석이라 '믿어'온 시간들. 당신이 믿고 있는 그 신념과 가치는 정말 당신의 것인가, 혹은 남의 것인가? 정보. Information. 정보는 '명령'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명령'을 배제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 생각을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배열하고, 말이 되는지 살펴보는 것. 그 일련의 행동 자체가 '나'에 대해,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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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해 반응하는 민감성은 사람마다 상이하다. 여기서의 '정의'는 Justice가 아니라 Definition이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사회과학도, 특히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정의에 아주 민감한 듯 하다. 예를 들면, 사건이나 어떤 현상에 대해 '아 이건 정말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의견에 '니가 생각하는 잘못의 정의가 뭔데?' 라고 묻는. 너무나 정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진저리 난다.
하지만 스스로 정의를 내려보는 것은 아주 큰 의의가 있다. 아주 비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어느 순간 '종교'에 관련한 논쟁이 붙었다고 생각해보자. 종교의 정의는 무엇인가. 종교를 한자로 풀면, 종 (따를 종) 그리고 교 (말씀 교) 가 된다. '말씀을 따르는 것'. 누구의 말씀일까. 궁극적으로는 신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언어의 형태로 전파되는 것이 종교의 교리인 만큼, 그것이 예수 (신의 아들)의 말씀인지, 혹은 모하마드 (예언자)의 말씀인지, 부다 (해탈자)의 말씀인지 종교마다 다를 것이다.
종교, Religion의 라틴어 기원은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religio 라는 라틴어에서 뻗어나왔다는 설. 이는 'the ultimate origines of which are obscure'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lego 즉, 읽다를 의미하는 라틴어에 re- (다시) 라는 접미어가 붙어 파생되었다는 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ligare 즉 연결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에 re-가 붙어 파생되었다는 설 등등.
인간의 다양한 언어로 쓰이는 용례는 다를 것이나, '종교'의 정의를 관통하는 요인이 하나 있다. 이는 이 세계를 관장하는 '신' 혹은 불가해하는 '힘'이나 '법칙'을 인간 나름의 방법 (즉, 언어)으로 해독해내려는 시도이다. 그리하여 난 사람들, 예수, 모하메드, 부다, 기타 등등... 이 사람들이 말하고 행한 것들이 전하여 내려와 성경이 되고, 경전이 된다.
이러한, '인간의 언어'로 전해지는 '신의 말씀'을 따르는 종교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앞 부분이다. '인간의 언어'라는 점. 신의 언어를 전하고, 해독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분파와 교리분쟁이 일어나고, 엄청난 피가 흘렀고, 여전히 종교는 우리 인간사회의 분쟁의 한 요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어쩌면 '해석'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 발전의 행위일 수 있으나, 어떤 맥락에서는 상호 파괴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관념을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글'을 믿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다면.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배타성'이 뻗어나온다면. 바로 분쟁과 반목의 시작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더 크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한 것이여야 하고. 그 이해에 다다른 이라면, 우리 모두가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 이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에 얼마 오래 살지도 않은 짧은 역사의 인간 종의 하나로서, 다같이 공생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수 있을까.
- 6월,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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