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으로 이사한 이 후, 매일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그리고 오늘 두번째로 걸어서 출근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 하루의 에세이를 쓴다면 그 주제는 아크라에서 걷는 다는 일,이 될 것이라고.
포장됨과 포장되지 않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이 아크라의 '보도'.
걷다보면 계속해서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사실 앞에서도 울린다.
택시를 왜 안타냐고 괜히 성내는 목소리 같아 신경이 쓰인다.
왜, 이렇게들 경적을 울려대는가?
이게 택시시장에서의 과다공급과 고탄력적인 수요곡선에 의한 과열경쟁때문인가,
혹은 그냥 택시운전기사들의 문화가 더 '적극적'인 호객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유없이 눌러보는 것인가?
신경이 쓰여 평화롭게 걷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이렇게 보도한다는 것이 어려운 곳에서 걸어다닐 수 밖에 없는,
혹은 왁자하게 여기저기로 뻗은 트로트로를 탈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가나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돈이 힘이고, 차가 돈을 상징하게 된.. 그래서 차가 먼저인 도시.
그곳에서 돈없고 힘없이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 5월 2014, 아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