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지난 밤에 잠결에 꺼버린 에어컨에도 불구하고 시원하다.
아침에 나서면서 바라보는 하늘에 회색빛 구름이 가득하고, 회사가는 길에도 등이 땀으로 흠뻑 젖지 않는다.
오피스에서 바라본 하늘은 다양한 층위의 회색으로 일렁거리고, 간헐적으로 비가 흩뿌린다.
그렇게 아크라에 비의 계절이 왔다.
딱 6월 1일에 시간이 접어들면서, 그 날부터 비가 자주 오기 시작했다. 비라는 녀석도 시간 개념은 좀 있는 모양이다. 우기를 만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바로 이 시원해진 날씨와 걸어다니기 불편해졌다는 점, 2가지가 아닐까.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틀던대로 틀면 금방 추워져버려서 다들 문을 환하게 열어놓고 일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어쩌면 가디건을 회사에 놔두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비가 내린 후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아크라의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은, 바로 내 신발을 희생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저기 땜빵으로 가득한 아스팔트 도로는 그 마저도 포장이 제대로 덜 되어 진흙탕으로 뒤범벅 되기 일쑤다. 걸어다니기 힘들다. 오늘만해도, 그렇게 의지 만만하게 타고 다녔던 트로트로도 정말 타러가기 싫은 마음이었다. 내가 왜, 6-7 쎄디 아끼자고 이렇게 걸어다니는가, 하는 심각한 철학적 질문으로 무장한 채. 트로트로를 타고 아, 내가 아프리카에 왔구나, 가나사람들이 타는 교통수단을 내가 타고다니는 구나, 하던 이상한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냥 이 정어리인지 사람인지 빡빡하게 들어앉아야 하는 트로트로를 더 이상은 타기 싫고, 돈 버는 걸로 그냥 택시나 타고 다녀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이상한 날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덜 포장된 망할 도로에서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비가 오는 풍경은 참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나 보다. 뿌연 창으로 바라보는 바깥 풍경, 그리고 함께 마시는 진한 커피, 잔잔하고 가사가 좋은 음악,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내맡길 푹신한 소파와 아늑함이 있는 아지트 카페, 그런 것들이 그리워지는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비가 오는 계절은 말이다. 그리고 태양으로 가득 차있을 때는, 활발한 광합성으로 금방이고 좋아지던 기분. 그 기분이 비가 내리니 아주 차분하게, 휘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딱 가라앉아 있다. 기분이 가라앉는 다는 것은 곧 허상으로 가득한 머릿 속, 잡념으로 잠 못 이루는 밤, 회색빛 전망으로 가득해진다는 것, 뭐 그런 것들을 의미할게다. 그래도 여기서 다른 점은, 숨이 쉬어진다. 서울의 그 욕망이나 사념으로 가득한 회색 빌딩들과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바쁜 사람들 뿐인 공간에서 장마가 오면, 정말 숨이 막힌다. 자아의 팽창이 몸을 가득 채워 도대체가 숨을 제대로 못 쉴정도로 답답한 지경이 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뇌에 아직도 바람이 분다. 한 걸음 물러서서 손을 뻗어 빗물을 받아보는 나의 손가락, 그냥 한 걸음 물러서서 맞는 비의 계절이다. 숨통이 트인다.
그렇게 비의 계절은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 6월 첫 주,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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