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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오후/영화, 매체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원제 Take This Waltz)

by 주말의늦잠 2015. 2. 1.



우리도 사랑일까 (2012)

Take This Waltz 
8.2
감독
사라 폴리
출연
미셸 윌리엄스, 세스 로겐, 루크 커비, 사라 실버맨, 제니퍼 포뎀스키
정보
드라마, 코미디 | 캐나다, 스페인, 일본 | 116 분 |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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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있음-



  드라마나 영화보다 현실에서 더 빈번한 것, 바로 두 사람을 사랑하는 일.


  나는 내 나이 또래나 조금 더 윗선 - 소위 결혼적령기 - 의 여자들과 이야기 할 때, 이러한 사랑의 근원적인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결혼해서 행복하고, 더할 나위 없이 사랑했던 남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결혼 5~6년 후에 '운명'을 만난다. 눈 속의 빛이 짜라랑, 귓속의 벨이 찌르릉 울리는 그런 남자를 만난다. 그러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그리고 이건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부일처제가 규약인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 


  영화에서 주인공 마고 역시 이 상황에 빠지게 된다. 5년간 결혼한 듬직한 남편 루, 그리고 프리랜서 작가 일을 하며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난 대니얼. 영화 속에서 마고와 대니얼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넘지 않아야 할 선 근처에에 둘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두 남녀가 서로 살을 맞대지 않고 물속에서 추는 춤은 아름다움의 압권이다. 두 남녀가 카페에 앉아 '말로' 섹스를 하는 장면은 실제 섹스씬보다 더 긴장된다. 


  결국, 마고의 남편은 마고를 보내준다. 마고는 울면서 대니얼과의 새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장소로 이사하고, 집에 가구가 놓이고, 둘이 사랑을 나누고, 가끔은 셋이 사랑을 나누는 (!) 장면이 연속으로 지나간다. 어느 순간 마고와 대니얼 역시 이전의 마고와 루가 그랬던 것 처럼 소파에 나란히 앉아 무표정하게 텔레비젼을 쳐다본다.


  


  그래서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중간의 수영장 장면의 여자샤워실 장면을 떠올린다. 나름 젊은 연령대의 마고와 시누이,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 현재 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듣던 할머니가 내놓는 촌철살인. "New  things get old." 그리고 카메라는 나이가 먹어 엉덩이와, 허리와, 다리에 중력의 힘을 듬뿍 받아 살이 늘어진 그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담는다.



  새롭게 시작한 관계 역시 결국은 낡을 수 밖에 없음은 관계의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닐까?


  그녀는 전 남편 루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 본다. '나랑 다시 왈츠를 추지 않을래?' 하지만 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마고는 울음을 삼키며 돌아선다. 그리고 수미상관 구조로 처음 마고가 후덥지근한 여름 날 쿠키를 굽는 씬이 재생된다. 뜨거운 스토브에 기대 촛점없이 눈을 들어 쳐다보던 그 상대는 대니얼이었던 것이다. 마고는 대니얼의 뒷모습을 안는다. 갈구한다. 그녀가 루에게 그랬던 것 처럼. 항상 닭을 요리하고 있었던 루의 뒷모습을 안았던 것처럼. 갈구하고 갈구하여 새로운 사랑을 찾았는데도, 여전히 갈구한다. 관계에서 채워질 수 없는 어떤 간극.


  마고의 전 시누이인 제랄딘이 다시 알콜중독자가 되어 그녀에게 톡 쏘았던 것처럼. 새로운 관계에 빠진다는 것이, 운명적일지는 몰라도 옳은지는 모르겠다. 삶은 항상 간극이 있는 법이니까. 그 간극을 채우려고 모두가 미친년처럼 애쓰는 건 아니니까.


"You think everything can be worked out if you just make the right move? That must be thrilling.. Life has a gap in it. It just does. You don't go crazy trying to fill it like some lunatic."




  이 간극이라는 것은 어쩌면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마고와 대니얼은 만남,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서 이 'Inbetween-ness', 즉 어느 중간지점에 있는 듯한 느낌은 중요한 열쇠이다. 


  마고는 조카 토니를 돌보면서 느낀 점을 고백한다.토니가 울 때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항상 그 이유를 찾아냈다. 그러나 가끔은 토니가 도대체 왜 우는 것인지 도통 알 수 가 없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토니도 그냥 이유없이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길을 걸으며 도로에 잘게 부서지는 햇빛을 보며 그냥 울고싶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그런 순간은 그냥 살아있음의 방증에 지나지 않음을.  


  대니얼 역시 고백한다. 마고는 비행기 환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는데, 이 또한 어중간한 상태를 두려함에 기인한다. 대니얼은 자신도 환승이 무섭다면서, 그게 살아있음의 본질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 어중간한 상태가 싫다. 


"I've been thinking about that airport fear of yours, of being in between things. I think I kinda hate it too. I know it's kind of the nature of being alive, but I'd like to avoid it wherever possible. I don't think I wanna be in between things."


  


  살아있음의 방증이라. 마고는 이 길이 아니라, 저 길을 택했다. 중간 지대에 있는 것이 싫어서. 하지만 그녀는 항상 그 중간지대에 있는 불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이 길로 돌아오고 싶기도 하다. 다시 이 길에서 왈츠를 추고 싶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쉬운 것이던가? 간극과 불확실성, 그리고 어중간한 상태가 바로 살아있음의 방증이라면, 그녀는 무얼 달리 할 수 있을까? 혼자있음을 오롯이 즐길 수 밖에. 영화의 마지막 씬은 그녀가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으로 막이 내린다. 배경음악이 흐른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s..... 비디오가 나왔을 때, 라디오는 거의 종말이 예견됬었었지. 하지만 그 후 디비디가 나오고, 홈 씨어터가, 노트북이, 스마트폰이 나왔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살아있다. 황홀한 만족감, 충만한 행복이 없더라도 관계는 그대로 수용해 가는 것.. 그게 사랑?


  그래서 영화는 '우리도 사랑일까?'라고 묻는다.




p.s. 덧붙이자면 영화의 블루톤 색감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갈팡질팡, 떨리는 손 끝과, 눈에 가득 고이는 마고의 눈물이 잘 녹아있는 예쁜 영상들과 색감. 그리고 미셸 윌리엄스는 영화에서 완전 마고 그 자체다.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