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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울분 - 필립 로스

by 주말의늦잠 2015. 1. 26.




울분

저자
필립 로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생이란 그런 거야.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영원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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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워낙 국내에서도 찬사와 명성이 자자한 작가다. 


  '울분'이라고 번역된 Indignation이란 단어는 부당한 처사에 분통을 터뜨리는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구글에 Indignation이라고 치면 나오는 정의 역시 "anger or annoyance provoked by what is perceived as unfair treatment", 즉 공정하지 못한 대우라고 여겨지는 일에 의한 화나 짜증인 셈이다. 그렇다면 '울분'은? 한국어 사전을 보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한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래서 약간 핀트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Indignation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억울하고 분하게 만든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연히 일어나는, 분노하는 감정을 가리키기 때문에.. 아마 이 '울분'이라는 번역에 대해 내가 좀 생각을 하게 된 듯. 역시.. 번역은 어려운 business임이 분명하다.


(혹시나 몰라서, 소설 내용 스포일러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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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쨋든 소설은 아주 짧다. 경장편. 총 242페이지에, 장도 3장 밖에 없다. 그도 '모르핀을 맞고'라는 장이 소설의 거의 90%를 차지하고 마지막 2개의 장은 다 합해서 10페이지도 차지하지 않는 듯. 그런데 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필립 로스의 수에 넘어가버렸구나, 싶었다. 보통 독자들은 아마도 소설에서 장이 몇 개인지, 장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장으로 구분된 그 소제목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지 않고 소설을 읽어나간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첫 장의 제목이 '모르핀을 맞고'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이 젊은 화자의 목소리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배경은 1950년대. 2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또 다시 벌어진 한국전쟁의 시작과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좀 뜬금 없으나, 항상 그렇듯이 소설가들은 소설의 시작을 아무렇게나 두는 게 아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동시에,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나 코셔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빠의 일을 도우며 자란 이 젊은 화자 마커스는 대학에 입학한다. 미국의 뉴어크라는 도시의 작은 대학 로버트 트리트에의 입학이라는 사건. 그리고 한국전쟁의 발발. 


  마커스는 대학을 다닌다. 대학 1년째에는 올 A를 받으면서 다닌다. 공부만 하고싶다. 그래도 대학 1년은 끔찍했다. 마커스는 집에서 더 멀리 떨어진 와인스버그라는 학교로 옮긴다. 클럽활동도 사교활동도 공부에는 방해가 된다고 느낀다. 이 과정에서 돌변한 아버지는 이야기의 보이지 않는 외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친근한 사장님 같았던 아버지는 갑자기 아들이 어디로 가든 위험에 빠지고, 죽을 거라는 강박에 빠져 가족을 들들 볶기 시작한다. 보이지는 않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에 드리운 그 임박한 위험의 구름을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설파한다. 미친 듯이 돌진하듯 운전하는 차들, 불량한 아이들이 진을 친 당구장이나 어두컴컴한 홀, 아들의 인생의 모든 곳에서 그는 위험을 강박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마커스는 그냥 일반적인 대학생일 뿐이다. 대학생은 징집이 면제되기 때문에, 대학생이라는 특권의 둘레에서 법률가를 꿈꾸며 그렇게 살아갈 일반적인 대학생. 그러나 배경은 1950년대. 세계의 어떤 부근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커스와 똑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징집되어 총알받이로 스러져나간다. 그 살벌한 세계의 외곽을 마커스의 아버지는 감지했던 것일까? 마커스는 감지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새로운 학교의 룰, 즉, 남녀의 소통을 전후방으로 규제하는 것, 사립학교에서 채플을 의무로 나가야 하는 것, 학생들이 여러 클럽으로 나뉘어 사귀는 것, 그 작은 대학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는 부당하다고 느끼고, 분개 (indignation)한다.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나간 채플에서 중공군의 노래를 속으로 부르며 부글부글 분을 삭힌다.

 


"[....] 나는 돈하워 박사의 두번째 설교를 끝까지 견디기 위해 기억을 뒤져 초등학교 때 배운 박자가 격렬하고 가사가 전투적인 노래를 찾아내야 했다. [...] 이런 가사였다. 


일어나라, 너희,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여!/ 우리의 살과 피로/ 새로운 만리장성을 건설하리라!/ 중국 인민이 위기에 빠졌다./우리 모든 동포의 가슴에 울분이 가득하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모두가 한마음으로/ 적의 포화에 용감히 맞서/ 전진하자!/ 적의 포하에 용감히 맞서,/ 전진하자! 전진하자! 전진하자!


돈하워 박사의 두번째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이 노래를 속으로 쉰 번은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또 쉰 번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단단히 뭉쳐서 '울분'이라는 명사를 이루고 있는 음절들을 특별히 강조했다[....]."



  자신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것에 분개하는 대학생, 마커스. 그는 학생과장이 요청하는 면담에서도 그 부당한 처우에 대한 분개를 숨기지 않는다. 독실한 기독교인 그에게 그는 러셀의 논리를 들어 그가 생각하는 부당함에 대하여 항변한다. 그는 여자도 만난다. 그의 전 일생에서 만나본 적이 없는, 그 젊은 나이에 이미 알콜중독 증상을 겪어보았고, 한 쪽 손목에는 손목을 그은 자살의 흔적을 가진 올리비아. 그러나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 자신이 처음 접해본 세계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관계는 이 50년대 이 보수적인 마을의 보수적인 학교에서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쨋든, 이러한 삶을 살던 마커스는 결국 19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마커스가 사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의 인생을 설회하고 있음은 소설의 이른 중반 쯤 밝혀진다. 센스있는 독자라면 첫번째 장의 제목인 '모르핀을 맞고'에서 '아하!'하는 순간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마커스는 퇴학을 당해서 징집되어 죽은 것이로구나.... 나 역시, 마커스가 결국 퇴학을 당하여 한국전쟁에 징집되어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에는 과연 마커스가 어떤 이유로 퇴학을 당했을지 생각하며 소설을 읽어나갔다. 학생과장의 면담 끝에 '아, 좆까 씨발' 하면서 나온 것일까? 올리비아와 '부적절한 일'을 저지른 것? 혹은 첫번째 장 마지막에 드러나게 되는 사건, 즉.. 올리비아를 임신시켰다는 누명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알게된다. 마커스가 심적으로 혼란한 상태에서 가입했던 학생클럽에서 채플을 대신 가주는 알바를 소개받은 일, 그리고 종국에는 채플을 참석하지 않는 다는 걸 학생과장에게 걸려, 채플을 의무 40회 대신 80회 참석하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는 딜을 거부하여 퇴학당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한국전쟁에 징집되어 큰 부상을 입게 되고, 모르핀을 맞은 상태로 이 소설의 첫번째 장, 즉 자신의 짧은 인생을 회고한다. 이 부분에서 웃지못할 역설은 학생클럽으로 데려간 '서니 코틀러'라는 아이는 마커스를 강박적으로 걱정하던 아버지가 사귀라고 여러번 종용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작은 일'로 분개하여 발을 잘못 디딘 학생은 가차없이 퇴학시켜버리는, 그래서 사지로 징집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내모는 당시 미국사회, 이 작은 대학의 목소리로 꽝꽝 울리는 듯 하다.



"[....]너희는 원하는 대로 어리석은 짓을 해라. 금요일 밤에 여기서 그랬던 것처럼 어리석어지고 싶어 미치겠다고 있는 대로 표현해라. 하지만 결국은 역사가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 역사는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 무대 위에 있다! 아, 그렇게 지독하게도 자기 시대를 모르고 살다니 정말 역겹다! 가장 역겨운 것은 너희들이 와인스버그에 들어와서 없애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무지라는 것이다. [...] 


이 기관에서 너희들이 조롱한 이상과 가치를 유지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런 의도적인 비행의 기쁨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계속되도록 허락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계속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규제할 수 있고, 규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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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쯤, 갑자기 두번째 장이 시작한다. '벗어나'라는 제목이다. 4페이지 분량. 마커스가 이등병으로 한국 어딘가에서 모르핀을 맞고 림보상태에서 죽음으로 가는 장이다. 마커스의 죽음을 안 아버지는 절규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문을 열어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 그래, 이러기만 했다면 또 저러기만 했다면, 모두 함께 모여 오랫동안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 [...] 코틀러가 그와 사귀지만 않았다면! 코틀러가 지글러에게 돈을 주고 채플에 대신 들어가게 하지만 않았다면! 지글러가 걸리지만 않았다면! 그가 직접 채플에 가기만 했다면! 만일 그가 채플에 마흔 번 나가 마흔 번 출석표를 제출만 했다면 그는 지금 살아서 변호사 일에서 막 은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


마커스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다름 아닌 메스너답게, 다름 아닌 버트런트 러셀의 제자답게, 주먹으로 학생과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두번째로 이렇게 내뱉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좆까, 씨발'


그래, 멋지고 오래되고 도전적인 미국의 '좆까, 씨발'. 그것으로 정육점 집 아들은 끝이었다. [...] 채플을 견디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었다면 마커스는 그로부터 열한달 뒤 와인스버그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을 것이다. 나아가 졸업생 대표로 고별사를 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랬다면 그의 교육받지 못한 아버지가 그동안 그에게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려 했던 것은 나중에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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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정말 소설이 끝났구나, 싶었는데 1장짜리 마지막 장이 나온다! '역사와 관련된 메모'. 1970년대 미국 뿐 아니라 와인스버그에 까지 불어닥친 사회적 격변과 변화와 항의에 대한 짧은 메모이다. 하룻밤 사이에 필수였던 채플이 폐지되고 그와 더불어 학생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거의 모든 구속가 규칙이 사라져버리는 70년대. 


  그 순간 마치, 이 짧은 전체 소설이 액자소설처럼 느껴지면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소설이 끝난다. 청춘의 분노와 분개, 그리고 그 응축된 '좆까, 씨발'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 아닐까.. '울분', '분노', '분개', 즉, Indignation. 그렇게 정육점 집 아들 마커스는 끝이었다.




  이게 필립 로스구나... 필립 로스적이라는 것이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