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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 스티븐 킹

by 주말의늦잠 2015. 2. 12.



유혹하는 글쓰기

저자
스티븐 킹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02-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소설만큼이나 명쾌하고 속도감 넘치는 글쓰기 교본 [유혹하는 글쓰...
가격비교



아마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제목만 보고는 그 저자가 스티븐 킹이라 해도 절대 안 샀을거다.

그런데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이 추천해주신 걸 보고 의심없이 사재낌. 무한신뢰.

음, 그런데 원재는 'On Writing' 이다. 그래서 더 직관적인 번역은 '글쓰기에 대하여'가 아닐까 싶은데,

저게 더 잘 팔리는 제목이라 그리 뽑았나보다. 

솔직히 영미권에서 저자가 스티븐 킹이라고 하면 제목이 '글쓰기'든 '글'이든 '쓰기'든 잘 팔릴듯.

그런데 한국 책들은 보통 저자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시 되므로 (일명 스타작가 아니면)....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원서을 보면 제목보다 저자 이름이 더 크게 표시되어 있다.

저자 이름이 먼저 표시되어 있고, 그리고 폰트 크기도 더 크다. 신기한 문화의 다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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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55페이지 분량에 옮긴이의 말까지 합하면 357페이지 분량.

스티븐 킹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 즉 회고록 처럼 시작했다가 

중간부분부터 '글쓰기란 무엇인가'의 장이 시작된다.

그리고 연장통, 창작론을 다룬 후, 인생론을 이야기한다.

나는 글쓰기를 이론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혹은 배웠는데 까먹어서 -_-)

연장통 부분과 창작론 파트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에게 글쓰기라는 '정신감응'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연장은 다음과 같다.

낱말, 문법, 문장, 문단... 여러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문장의 구성요소들이나, 문단의 길이 등등

글쓰기에 필요한 연장들에 대한 abc를 이야기해준다. 

내가 흥미롭게 여긴 부분은 수동태와 부사였다.

한국에서는 글이 술술 잘 읽히거나, 글에 힘이 있으면 그것을 '필력'이라고 표현한다.

내 경험 상으로도, 필력이 있다고 느낀 글들은 '명료'했다.

자신이 독자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진실'을 수동태나 부사의 방해 없이 표현해내는 것.


문장의 길이가 짧을 수록 필력이 높은게 아니다.

미사여구를 수없이 나열하고, 애매모호한 수동태를 남발해 독자를 혼란시키는 일이 없어야 된다는 것.

다양한 예를 들면서 스티븐 킹 할배가 설명해주시니.. 난 정말 백프로 이해했다.

그런데 아직 백프로 연습은 못 함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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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론 파트에서도 인상깊은 부분이 있다.

흔히 작가, 특히 소설 작가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스티븐 킹은 다르다. 그는 이야기가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즉 작가는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그걸 받아적는 사람이다.

음, 재밌네. 킹 할배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

마치 고고학적 발견을 하는 것처럼, 숙련된 연장들을 가지고 땅 속에 파묻힌 뼈를 파내는 활동처럼,

글쓰기를 대해야 한다고. 연장이 허술하면 결국 뼈가 온전하게 드러날 수가 없다.

놀라웠다. 내가 생각해온 '글쓰기'의 패러다임 전환이랄까?


그리고 킹 할배는 '플롯'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듯.

특정한 상황에서 이야기는 저절로 흘러가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적어갈 뿐.

얼마 전 한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물론 작가의 인터뷰.

그 작가가 이야기 하기를, 소설의 목소리들이나 이야기가 너무 빨리 흘러가서,

자기가 적어내는 속도보다 더 빠를때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 킹 할배 말로는 뮤즈가 - 작가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해주는 듯이.

물론 킹 할배의 뮤즈론은 아름다운 여신 뮤즈와는 사뭇 다르다.

그의 뮤즈는 굉장히 심드렁하고 까칠한 '남성'이란다.

김영하 작가의 '옥수수와 나'를 떠올렸던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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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 없이 킹 할배는 작가의 삶을 살았고, 작가'다운' 삶을 살아오셨다.

가끔 작가들은 일반인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련의 경험들을 하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전쟁 징집되었다가 살아오거나, 거대한 정치 시위에 휘말리거나, 등등)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많다. 이런 관점에서 킹 할배도 격동적인 역사의 경험을 하신건 아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지나치게 왕성하던 형, 그 지나친 호기심에 담배를 피며 웃어넘길 줄 알았던 엄마,

지지리 궁상떨며 살았던 가난한 젊은 시절, 교통사고.. 등등. 

그의 인생에는 굴곡이 차고 넘친다.

굴곡의 고랑 여기저기에서 작가의 눈으로 포착한 '소재', '상황'에서 그는 이야기를 했다 (storytelling).

그리고 그는 세계적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이야기한다.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 변하기란 불가능하다.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반론은 많다. 


그러나 나는 킹 할배가 자신을 스스로 '위대한'작가 범주에는 못 든다면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포크너, 예이츠, 쇼, 유도라 웰티와 같은

역사적 우연의 산물인 천재 범주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 '우리'에는 킹 자신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감동적이었다.

스티븐 킹이라는 인간의 인생회고록이자, 그의 작가인생 역경이며,

그가 그저 괜찮은 정도의 작가에서 제법 괜찮은, 혹은 훌륭한 작가로 성장한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동시대 작가들을 서슴없이 quote하여 비평하고,

실제 작품에서 예문이나 예시를 가져와 평론하는 부분에서는.. 뭐랄까.

그의 작가로서의 고집이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그의 책의 논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반대 여지가 많은 책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세세하게 적어놓은 그의 '비법'에 귀를 귀울이지 않을 수는 없다.


스티븐 킹은 재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