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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

나를 타자화한 이야기

by 주말의늦잠 2014. 9. 24.


많은 일들이 일어나던 21세기의 어느 날이다. 


전쟁, 테러, 공습, 사망, 추돌, 추락, 습격은 어디선가 항상 일어난다. 누가 역사의 종말을 논했는가. 역사는 종말이 아니라 여전히 종말로 치닫는 중이다... 라고 너는 생각했다. 너는 매일 아침 알자지라의 국제뉴스를 대륙 별로 확인하고, 큰 사건들은 몇일 간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려 애쓴다. 사실관계라 말했지만 사실 너가 정말로 알고싶은 것은 인과관계일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지구에 존재한 이래 끝도 없이 반복해 온 인간의 인과는 어디인가? 도대체 어디에서 이 악은 도래했으며, 어디로 흘러가고 있단 말인가?


냄비 뚜껑을 밀어버릴 기세로 부글부글 끓는 너의 마음과는 달리, 너의 생활은 안정적이다. 아침에 7시 반 알람을 듣고, 그 후에 7시 40분 알람이 울린다. 그래도 더 자도 된다는 안정감이 방에 가득차 있다. 늦게 일어나서 늦게 출근한 사무실에서 일들은 여전히 느리게 진행된다. 개념과 정책과 효율과 정의와 인권을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반박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의 마음은 어쩌면 주말에 떠날 여행에 더 몰려있을지 모른다. 주말에 쓸 돈을 바꾸려면, 환율을 계산해 봐야 하는데, 음 환율을 보니 많이 내렸다. 이런 것에 마음이 더 쏠려 있다. 너는 사실 엄청나게 거대한 허울좋은 관료제에서 조그마한 나사를 담당하고 있다. 그 나사가 빠지면 한 동안은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으나, 큰 그림에 크게 영향은 주지 못한다. 


너의 가장 깊은 고민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너가 보고 생각하는 거대한 일들, 인류 역사의 흐름 같은 것들에 너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인류라는 종이 우주의 역사에서 하나의 점일진대, 그 인류중 한 개체로서의 너는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너가 이번 해에 깨달은 가장 큰 깨달음은 그냥 좋을 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냥 흘러가서 좋으면 좋고 안 좋은 것도 좋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깨달음이다.



- 8월,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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