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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을 걷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by 주말의늦잠 2016. 2. 14.





  나쓰메 소세키가 사망하기 2년 전 발표했던 소설. 얼마 전에 소세키의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이번에는 거의 마지막 작품을 읽었다. 젊었을 때의 유머와 치기,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보다는 내면과 자아 성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가 돋보인다. 구정 전후로 읽었는데, 흡입력이 매우 높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결국 마지막까지 읽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나는 대학 때 이 소설을 이미 읽어서 결말이나 진행구조를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 나와 선생님의 대화, 그리고 죽음을 테마로 한 나와 아버지의 관계, 나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더 치중해서 읽었다. 첫번째 장 '선생님과 나'에서는 화자인 나와 선생님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다. 동성애적 코드가 있다고 하면 좀 망발일지 모르나, '나'가 선생님에게 이유없이 친밀감을 느끼고 존경과 관심이 가득 섞인 감정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스승'을 넘어선 한 인간에 대한 끌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끌림은 아마도, 그 선생님의 마음 속 깊이, 아마 인간의 핵, 코어라고 할까? 그 곳에 자리하고 끝없이 선생님을 갉아먹는 기억에서 발현되는 것일까.


  재미있는 것은 두 번째 장 '부모님과 나'의 마지막에서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선생님을 뵈러 도쿄행 기차를 타는 부분이다. 그리고 세번째 장 '선생님의 유서'는 그 기차 안에서 화자가 선생님의 긴 유서를 읽는 부분인데, 이 장에서의 화자는 사실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유서로 해주는 이야기에 대해 이 젊은 '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을지, 그의 미래에 있어서 그 유서가 어떤 도움이 될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마음'은 열린 결말로 급하게 소설을 마무리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열린 만큼 독자는 해석의 자유를 갖게 된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이 소설의 스핀오프가 일본에서 여러 작품 출판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유서를 다 읽은 '나'가 이제 사회에서 겪는 일들이나 자신의 자아와 본성에 대해 고찰하는 뒷 이야기는 아무래도 작가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주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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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황이 죽으면서 메이지 시대의 문을 닫는 듯한 느낌의 이 소설은. 그 당시 일본 지식인의 마음 속을 드러내 보여준다. 사회와의 불협화음. 자의식의 과잉 발현. 전반적으로 '심각함'이나 '자의식'이 허세나 진지충으로 격하되는 이 사회에서, 이 소설은 분명 나에게 자의식이 과잉 발현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 주위에 이런 인간들이 있다면 아마 굉장히 답답할 것이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과거의 일을 반추하고, 씹어서 다시 게워내서 또 반추하며 살아가는 인간형. 하지만 이 선생님의 모습에는 분명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점이 있다. 선생님은 유서 마지막에 이렇게 과거의 일을 소회하는 까닭을, 이 젊은 '나'의 인생에 일말의 도움이 될 희망으로 쓴다고 하는데 이 말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 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면, 결국 그게 물질적인 수준을 넘어 타인의 마음, 사회의 마음에 영향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 마음도 잘 보기 힘든 이 세상에,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눈물로 호소해도 일회성일 뿐이고, 결국 어떤 중요한 행동의 변화를 낳게 하는 것은 평범한 원리라는 것.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는 옛말이 정말 맞다는 것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얼마나 생활 속에서 공기로 느껴지는지. '마음'의 선생님은 결국 자기 속에 갇혀 평생을 살았지만, '나'에게 이 평범한 원리 하나를 이야기해주기 위해 자신의 오장육부를 다 드러내는 고백을 해야했다. 내가 내 후대에게, 내 아이에게 남겨줄 단 하나의 평범한 원리가 있다면. 그걸 내 인생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현학적이고 말뿐인 문장이 아니라, 따뜻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이 내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올 수 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글로 적히고 출판되어 널리, 오래오래 읽힌다면. 그래서 선생님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 자신의 제자에게 내보일 수 있었기에.. 


 자네, 아직도 기억하는가? 내가 언젠가 자네에게 이 세상엔 나쁜 사람이라고 정해진 인간은 없다고 한 말을.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한순간에 나쁜 사람아 돼버리니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한 말을 말이네. 그때 자넨 내가 흥분하고 있다고 지적했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선량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냐고도 물었지. 내가 한마디로 '돈'이라고 대답하자 자넨 영 석연찮다는 표정을 지었잖나. [...]


   내 대답은 사상 문제를 깊숙이 탐구해 나가려는 자네가 듣기엔 시시했을지도 모르지. [...] 하지만 난 냉철한 두뇌로 새로운 발견을 입에 담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편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네. 피가 돌아야 몸이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진실을 담은 말은 의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보다 강한 힘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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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596 작은아버지에게 배신당했을 때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점을 절실히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건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지, 내 자신에게만큼은 그때까지만 해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나 자신은 멋진 인간이라는 신념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단 말이지. 그 믿음이 K로 인해 무참히 깨져버리고 나 자신도 작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게 됐네. 인간들에게 등을 돌린 나는 결국 나 자신도 저버리고 닫힌 공간에 날 가두게 된 것이지.


 p.602 K가 나처럼 혼자 남겨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결국 마지막 길을 선택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에 거기에 미치자 난 갑자기 소름이 끼쳤네./ 나 또한 K가 선택한 길을 그의 뒤를 따라 밟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거야. 소리 없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홀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