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깜깜한 정전이었다.
밤새 땀을 흘린지라, 등을 베었더 이불이 조금 축축한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 하지만 당시엔 정말 생생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어젯밤에 배부르게 먹고 잤음에도 아침에 그녀는 허기를 느꼈다.
냉장고를 열어 달걀과 양배추, 빵, 치즈 등을 꺼내어
가볍게 샌드위치를 해먹었다. 함께한 초코민트티도 근사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사무실로 길을 재촉하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미 지나버린 시간 속에 기억의 그물을 빠져나가버린 생각은 정말 다시 잡아올 수는 없다.
어제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한 달전에는, 일년 전에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 당시에는 정말 미칠듯이 뇌가 닳도록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더운 여름날의 스펀지처럼 그냥 증발해버리는 것 같다, 기록되거나 되새기지 않는 그 모든 기억들은 ..
그녀의 기억은 둘째치더라도, 그 마음이란 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외부상황의 약간의 변화나, 어떤 정체의 기미만 보이면 마음이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할 일이 없어지는 순간, 그녀가 건너온 그 수많은 바다와 땅을 생각하며
그녀가 여기 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기 일쑤이다.
그리고 종종 그녀의 손을 빠져나가버린 어떤 기회에 대한 아쉬움도 단골 방문객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마음 상태에 침체될 정도로 약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새로 산 물건이 몇 일이 지나면 결국 권태롭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 처럼,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 것도 한 번 내 것이 되어 버리면 결국 내가 헤쳐나가고 견뎌내야할
삶의 일부가 된다.
그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결국은 .. 한 걸음, 걸어갈 뿐인 삶의 단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의 이 순간에 그녀가 필요한 것은
더 내려놓는 일이다. 더 내려놓고, 더욱 고개를 숙일 때 조금 더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퍼내고 또 퍼내도 다시 차오르는 샘처럼 ..
현상에 갇혀, 나의 형상에 갇혀 울타리를 친 마음에 고인 물은 썩어갈 수 밖에 없다.
'나'를 주장할 때보다 '나'를 버릴 때 더 얻을 것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역설인가!
'일상적인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과 생활의 소화 (0) | 2013.04.19 |
---|---|
비판 (0) | 2013.04.17 |
가나사람과의 첫 말다툼 (!?)과 팔찌 2개 - (0) | 2013.03.11 |
부엌에서 화들짝 잠 깬 이야기 (0) | 2013.03.08 |
필연적인 일상으로의 회귀 (0) | 2013.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