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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현재, 다레살람

불평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by 주말의늦잠 2016. 5. 22.


  블로그의 지난 포스트를 보니 3월 20일이 마지막 작성일이다. 일기장을 들춰보니 4월 21일이 마지막 작성일이다. 에버노트 노트를 보니 2주 전에 마지막 메모를 적었다. 오늘은 5월 22일이다. 아주 오랫동안 깊게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생각을 글로 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뭘까. 바빴을까? 물론 바빴다. 일에서도 점점 적응을 해가고, 생활도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하루하루가 짧아져갔다. 그런데 앉아서 생각 한 줄 못 내놓을 정도로 바쁘진 않았다. 물리적으로는 언제나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집과 월세 선금에 관련한 자질구레한 행정절차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일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첫 몇달이 흘러가질 않아 이래저래 고군분투했다 (아직도 하고 있다). 개인 생활에서는 이유없이 나 스스로를 바쁘게 만드려는 시도를 했다. 모임에 나가고, 운동을 하고, 뭔가를 배우러 나갔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날씨 탓인지, 아니면 바쁜 마음 탓이었는지 눕자마자 항상 잠에 골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점점 힘들었다. 


  이 몇 줄로 묘사한 나의 상황/혹은 마음 상태가 내가 행복하지 않았거나, 엄청 힘들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의 삶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고, 무사히 지나쳐 가는 것은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 혼자 다레살람에 떨어져서 혼자 저녁 먹고, 혼자 라면 끓여먹었던 그 날들보다는 누군가와 만나고, 모임에 나가고, 흥성흥성한 기분에 젖는 현재가 더 즐겁다. 그 순간순간에서는 즐겁고, 행복하고, 혹은 절망스럽고 짜증나는 상태가 뒤섞여 있었지만, 지난 3달을 통째로 놓고 보니 또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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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기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면 정말 길러진대로, 살아온대로, 한 치도 거짓말 없이 딱 습관대로다. 그리고 습관이 무서운 점은, 내가 그 습관을 알아채고 조절하지 못 하면 그 습관이 내 기분과 내 마음을 조정한다는 거다. 오늘 내가 지나온 3달을 가만히 돌이켜보고 느낀 것은, 내가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불평이 습관이 되고 있구나, 하는 점이다. 항상 하는 것 없이, 주는 것 없이, 변화하려는 시도도 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행태를 그렇게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자칫하면 그런 사람이 되겠구나. 


  왜냐? 여기는 동아프리카고, 탄자니아고, 다레살람이다.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는 가족의 품안도 아니고, 내가 익숙한 문화권도 아니며, 생활과 사고 방식, 사람들의 성향과 성격,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므로 이 곳에서 아주 다른 문화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온 내가 계속 좌절감을 느끼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다름'에 대하여 우리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이 '다름'은 '틀림'이 되기 쉽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상을 '틀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결국 내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럼 그렇지! 여기가 뭐 그렇지! 짜증나고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불평과 불만은 건설적인 대안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된다. 하지만 불평과 불만을 습관적으로 내놓으면 안 된다. 부정적인 생각은 참 오묘한게...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나갈 수록 중독적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중독적이라는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한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지는 않은가? 만사에 실망하고 우울해져 있는 친구에게 좋은 말로 설득하고 용기를 북돋아도 귓등으로 들으려고도 안 하고 계속 우울감에 빠져있는 모습을? 나는 지난 주에 나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과 불만에 흠뻑 젖어, 소중한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의 한계행복량을 스스로 좀먹은 바 있다. 그리고 오늘 마음 먹었다. 조금더 나를 더 자주 뒤돌아보고, 글을 쓰자고. 나는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 가장 현명한 상태로 변한다. 아무리 잡글이라도 글을 쓰기 전에는 청소를 하고 책상을 다 정리해놓고, 밥을 먹고 배고픔도 다 해결해 놓아야 글을 쓸 실마리가 잡힌다. 이렇게 가장 현명한 상태를 몇 달간 잃었으니, 불평분자가 되는 것도 역시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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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계속 좌절하고 불평하는 이유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내 이해관계'와 '내가 가진 잣대'의 기준에서만 만사를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내가 마주하는 상황에서 나 스스로는 내가 공익적인 기여를 위해 여기 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겉꺼풀을 벗겨보면 나는 여기 나의 생존을 위해 와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생존이 먼저다. 나의 동물적인 욕구를 다 채워야만, 그 상위의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먹고 사는 데 지장없고, 일정 정도의 삶의 질을 보장받고 있으면서, 여전히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건 정말 꼴보기 싫은 일이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쉽게 일을 해내고,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조건이 완벽한 직장이 있는가? 일은 일이다. 그리고 조직은 조직이다. 현재 상황에 끊임없이 불평하는 사람은 천국에 데려다줘도 여전히 불평할지 모른다. 내 일에 대해 급여를 받고, 그래서 먹고 살 생존권이 보장 받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내에서 할만큼 하면 된다. 묵묵히. 필요한 말은 입 밖으로 내놓고, 필요 없는 말은 개인 일기장에 내놓으면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삶을 즐기면 된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우리는 언젠가 죽으니까. 


  이렇게 현명하게 적어도, 내 레벨에서는 현명하게 내 생각과 마음의 축을 돌려놓는 일을 더 자주 해야겠다. 일상생활에서 순간순간마다. 정말 중요하다. 왜나하면 순간의 행복감이 내 마음의 행복감이고, 모든 순간의 행복함의 총 집합이 내가 지나온 날들의 행복감을 대변하므로. 순간의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 것. 나의 2016년 현재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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