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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현재, 다레살람

이사

by 주말의늦잠 2016. 3. 20.


  어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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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주 정도 사무실 주변에 있는 아파트를 돌아본 결과 제일 마음에 드는 곳으로 결정했다. 내 이름으로 처음 계약이라는 것을 해보아서 싸인하기 전까지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이렇게 혼자 나와 살면서 - 그게 서울이든 아프리카의 어떤 도시든 -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 보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서울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가나에서는 약식 계약처럼 하루만에 집 정착을 끝내버렸었다. 그래서 이렇게 어떤 법적인 효력이 있는 여러 장의 계약서를 읽고, 네고하고, 마지막으로 싸인을 해서 이사까지 마친 건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책임감이 이렇게 현실성 있는 실체로 다가온 것도 처음이다.


  아프리카의 모든 도시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월세 계약을 해도 보통 6개월에서 1년 advance payment를 요구한다. 가나에서도 1년에서 2년 선금을 요구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지금 현재는 석유와 가스 회사들이 국제 원유가격 급락/불안정 때문에 철수하거나 파견을 중지해서 그런지.. 부동산 시장이 임대인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그래서 월세 협상 여지가 많아서 나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2년 전만해도 부동산 시장이 포화되서 집 가격이 천정부지였다고 하니. 그런데 특기할 점은.. 아프리카의 대도시의 집세는 거의 서울이나 심지어 제네바/뉴욕 수준을 상회하는 듯 하다. 아주 비싸다는 뜻이다.. 그 이유인 즉, 외국인으로서 살 수 있는 거주의 스펙트럼이 양극화 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중간 점이 없어서, 아주 싼 월세로 집을 쉐어할 수도 있지만 그 만큼 시설이 열악하고 그 반대 지점에는 아주 좋은 빌라형 아파트들이 풀 옵션을 장착하고 시장에 나와 있지만 그 만큼 가격을 치러야 한다. 그 어떤 중간점이 없다. 특히 원룸이나 스튜디오형, 방 1개 짜리 아파트가 아주 드물다. 보통 여기 파견되는 외국인들이 가족을 데리고 오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건축업자로서도 방 2개, 3개짜리를 지어서 더 비싼 가격에 내놓는 게 수지가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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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었으나, 어쨋든 결론은 이사를 잘 마쳤다. Stamp duty 및 선금 지불 등등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어쨋든 드디어 짐을 다 풀어버리니까 속이 시원하다. 어제 내가 '집'이라고 부를 이 곳에서 첫날 밤(-_-?)을 보냈다. 이제 또 자질구레하게 장 볼거리가 계속 생긴다. 키친타올, 휴지, 섬유유연제부터 시작해서 후추, 쿠킹 오일, 랩, 밥/국 그릇 등등..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이리도 많은 공산품들이 필요하단 말인가... 운전도 안 하니 장 한번 보러가는 것도 일이다. 이럴 때는 서울 우리 집 바로 앞에 있었던 중형 마트나 15분 걸어가면 있었던 대형마트에의 접근성이 그립다. 


  어떤 비젼을 가지고 왔든, 어떤 중대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든, 혹은 어떤 이상을 머릿 속에 그리고 파견이 되었든. 집은 구해야하고, 장도 봐야한다. 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자질구레함들은 내가 무소유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언제나 팅커벨처럼 내 주위를 떠다닐 것이다. 사소한 불편, 사소한 불평. 너무 인간적이라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자질구레한 것들을 차분하게 처리해나가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곧 정착기는 쫑내고, 일이나 생활, 혹은 여행을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정착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성질의 사건이다. 안정된 생활의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정착은 계속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보통 안정된 생활이 되면 떠날 때가 다가온다. 프로페셔널 호모 노마드들의 삶은 언제나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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