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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각/현재, 다레살람

삶은 이어진다

by 주말의늦잠 2016. 3. 11.



  삶은 이어져야 한다. 일은 해야하고, 글은 써야하며, 삶은 살아야한다. 그래서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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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레살람에 도착한지 2주가 되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마치 2달이라도 된 느낌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아프리카 대륙에 나와 사는 게 두 번째이다 보니, 계속 여기서 겪는 경험을 아크라에 비추어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 여기는 아크라보다 맥주가 조금 더 비싸네, 여기는 아크라보다 치안이 더 안 좋네, 아크라에서는 이랬었는데 여기는 저러네, yada yada.. 그렇다. 이 곳은 아주 다른 곳이다, 아크라와는. 왠지 모르게 아크라가 조금 어리숙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었다면, 다레살람은 더 닳아 빠지고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준다. 우선 인도양에 접해있어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고, 탄자니아 내륙에는 다양한 game drive를 즐길 수 있는 국립공원이 널려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expat 뿐만 아니라 관광 인구가 엄청나다. 그래서 bilateral이든 multilateral이든 출장오기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사람들은 스와힐리어를 쓰고, 마치 프랑코폰들처럼 나에게 스와힐리어를 가르쳐주고, 스와힐리어로 말하기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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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의 치안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전쟁이나 내전은 없다. 평화로운 민주주의 국가다. 무장 강도들이 총들고 설치고, 마약 카르텔이 서로 피의 복수를 하는 곳도 아니다. 평화롭다. 하지만 생계형 범죄가 빈번하다. 특히 외국인들 밀집 거주지역인 마사키와 오이스터 베이에서는 백팩이나 핸드백을 들고 걸어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가 돈다. 승용차를 탄 강도들의 날치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크라에서만큼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없는 것도 아쉽다. 아마 차를 운전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는. 하지만 2014년에 왔을 때 수도 다레살람 말고 모시나 아루샤, 잔지바르에서는 치안이 더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때는 뭣도 모르고 홍냥거리면서 좋다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처음 와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도 경험한 바가 있어 많이 걱정이 되긴 했는데. 이런 걱정은 푸른 코발트 빛의 인도양을 보면 싹 날라간다. 바다에는 힘이 있다. 어째서 우리는 바다와 어머니를 동일시하는 감각을 전 세계적으로 갖고 있을까. 이해가 된다. 끝도 없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그 짠내음을 맡고 있자면 머리 끝까지 올렸던 가드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아직 제대로 해변은 가지 못 했지만, 차를 타고 달릴 때, 살 집을 구하러 여러 아파트를 보러 다니면서 마주한 바다에 자주 안심했다. (그렇다, 지금 집을 보러 다니는 중이다.. 아직 짐도 다 못 풀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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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적응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무실 사람들 얼굴이 조금씩 익고, 매일 다니는 거리도 익숙해져간다. 하루에 겪는 경험의 양이, 그리고 머리에 들어오는 정보양이 평소보다 훨씬 많아서 허둥지둥 바쁜 느낌이긴 한데.. 제대로 적응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느끼는 것은 이 유엔 직원의 삶이 국제 노마드의 삶이자 끝없는 여행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언제나 타향의 어딘가로 뱃머리를 돌려야 하는 인생길. 가족이 있는 이들은 그렇게 가족을 데리고 이 대륙에서 저 대륙,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열심히도 잘 다니며 일한다. 이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처음에는 좋아서 하는 줄 알다가도, 어느 순간 사람들은 결국 이 길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이게 좋은가? 적게는 1년부터 길게는 4-5년마다 나의 보금자리를 뿌리채 뽑아 옮겨가야하는 이 길을 나는 정말 잘 걸어나갈 수 있을까? . 어쩌면 이건 결국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인간의 변덕일지 모른다. (나랏님이 못 구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가난과 인간의 변덕이라고 한다. 누가 그랬냐고? 내가.)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그렇게도 지겨워하고 못 견뎌하면서도, 또 나오면 다시 안정을 갈구하는 이 죽 끓는 변덕. 


  그러나 - 사실 지금은 즐겁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언어를 마주하고, 전혀 다른 세상 앞에 오롯이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고, 그 도전 앞에서 나는 신이 나 있다. 건강과 안전, 그리고 행복함 이외에는 모든 것이 보너스다. 여기서 배우고 얻어가는 모든 것들은 내 인생의 보너스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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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다레살람,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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