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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에 대하여

말라위 정착기 & 두서 없는 커리어 이야기

by 주말의늦잠 2022. 2. 15.

  말라위에 온 지도 벌써 2개월이 되어간다. 2개월이지만 정착에 수반되는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어서, 이미 오래 있었던 기분이다. 여기에서 내가 아직도 적응하기 굉장히 힘든 부분이 바로 전력수급난이다. 지난 달 말 정도에 말라위 남부 지역에 허리케인 Ana 때문에 수해피해를 입어서 80명이 넘는 수해민이 발생하고, 남부 지방의 주요 전력 발전소가 데미지를 입는 바람에 현재 말라위 전역의 전력 수급은 보통 케파에서 70%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한전같은 곳이 말라위의 에스콤 (ESCOM, Electricity Supply Corporation of Malawi Limited)인데, 이미 몇 주간 Load shedding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아마 한국이나 기타 선진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단어일텐데, 전력 수급을 지역 단위별로 잘라서 하루에 6-7시간 정도 전력을 끊는다. 나는 load shedding 프로그램의 존재만 알고 있다가 그냥 패턴으로 지금은 파악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오늘은 저녁, 내일은 오후, 그 다음 날은 아침, 이 순서대로 전력이 차단된다.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서 사실 1시간만 운전해서 나가도, 사실 정말 수많은 집을 보면 전기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월드뱅크 2018년 자료를 보니 access to electricity가 있는 인구가 11.2% 밖에 안 된다. 진짜 내가 그 전에 살았던 개도국 중에 가장 못 사는 나라임은 분명하다. 분명 수도에 사는 데도 빈곤이 너무나 도처에서 잘 보이고, 국가의 경제 기반이라는 것이 너무 열악하다. 말라위에서 그나마 value addition이 되는 건 담배업 (tobacco industry) 정도?

 

  나는 현재 청소년 성생식 건강 프로젝트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데, 데이터를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여자 청소년들 1/3은 이미 임신해있거나 첫 애를 낳았고, child marriage도 연령 그룹대마다 다르지만 30%-40%나 된다. 너무 지지리도 못 사니까, 여자아이들은 그냥 결혼시켜버리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여자 아이들은 어리면 10살이라는 나이에 결혼해서 애를 낳게 되면 평생 빈곤의 늪에 빠지고 만다. 사실 몸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출산을 하면서 죽지 않으면 다행이기도 하다. 의료시스템도 열약하다 보니 어린 여자아이들이 출산을 하다가 '누공 (fistula)'이라는 병을 얻기도 한다. 방광과 질 사이 혹은 방광과 직장 사이의 구멍으로 소변과 대변이 계속 새는 병인데, 치료받는 게 비싸기도 하고, 거의 사회생활이나 개인생활이 불가능한 장애 수준인데.. 나는 이 병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Fistula라는 병에 대해 들어보신 분? 아마 없을거다. 한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의학적 장애를 쭉 나열한다면 가장 극단의 어려움을 겪는 병일텐데, SDG고 뭐시고 그 누구도 이 여자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소위 '더럽고 냄새나는' 병이기 때문에 도너들도 펀딩을 꺼린다고 한다. 얼마 전에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다가, '더럽고 냄새나니까' 젠더나 성평등이라는 근사한 포장지에 싸서 도너들에게 팔아야 한다고 동료와 농담하기도 했다 (이런 농담 자체가 Incorrect 할 수 있지만, 나는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이번 글은 좀 두서가 없는데. 내 머릿 속이 두서가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나는 새로운 임지에 가서 정착에 애를 먹고 고생하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보며 공감을 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이역만리의 낯선 나라에서 혼자 정착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멘탈과 젠 (zen)이 필요하다. 국제개발에 뜻을 둔 분이시라면 언젠가는 이런 순간을 만날 것이다. 처음에는 봉사단원으로 혹은 코디네이터로 혹은 컨설턴트로 국제기구 혹은 비영리 기관에 취업하여 새로운 도전과 문화와 일을 배우고, 가끔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삶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에 흡족할 것이다. "이 나이에 이 정도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그런데 어느 정도 짬밥이 쌓여서 이 국제개발업의 생리를 파악하게 되면 이렇게 현타가 오는 순간이 기필코 온다. "내가 맞는 길을 온 건가? 이 생활이 나에게 맞는 건가?" 그 때 가장 중요한 건 prioirty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커리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 그 다양한 요인들 속에서 priority를 명확하게 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국제개발업무를 오래 길게 할 수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