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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에 대하여

말라위 구석에서의 지적인 대화

by 주말의늦잠 2022. 1. 9.

  말라위에는 이제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었다. 약 3주 전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낮에는 체감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고 서하라 이남의 햇빛이 쨍쨍하여, 지대가 꽤 높은 말라위도 이렇게 덥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제는 저녁에는 가디건을 입어야 할 만큼 선선한 날씨고, 오전에는 해가 쨍하다가도 오후에는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날들의 시작이다. 한참 집과 차를 구하면서 물질적인 시간은 많지만 마음의 시간이 없었다. 한 2주정도? 오늘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 (말하면서도 웃기다)인 A와 만나기로 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처음 갔던 꽤 posh한 카페에 테이블이 다 꽉 차 있어서 가까운 곳으로 간 카페에서 텍스-멕스 보울과 로즈마리가 인퓨즈 된 진토닉을 곁들어 먹었다. 텍스-멕스 보울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이 친구 A는 말라위 사람이지만 엄마 쪽이 남아공 쪽으로 '섞인' 사람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이 동남아프리카 쪽을 지배하면서 케냐, 짐바브웨, 남아공은 영국 식민지배자들이 실제로 와서 정착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시스템이나 인프라를 개발할 인센티브가 있었다. 그러나 말라위는 영국령이었으나 주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짐바브웨, 남아공 등으로 노동력 차출되어간 말라위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러면서 말라위-짐바브웨, 혹은 말라위-남아공 피가 섞인 가족들이 꽤 많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은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인데, 그에 따르면 이 역사적인 맥락 때문에 짐바브웨의 교육시스템이 굉장히 선진적이라 아프리카 각국에서 유학을 가는 곳이고, 자기 자신도 고등학교 때 유학을 다녀왔다고 한다. 

 

  친구가 참 똑똑하고 세계 역사와 지리에 대해 꽤 해박하여, 아주 오랫만에 지적인 대화를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 날 한 3시간 이상 밥 먹고 나서 와인을 마시며 아프리카의 역사와 지리, 종교, 믿음 등에 대해 대화했다. 놀랍게도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개발 궤적과 유명한 리더들 (덩샤오핑, 박정희, 리콴유 등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지금은 개발궤도를 훨씬 앞서나간 아시아 국가들의 예로 비추어,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의 궤적도 논의해보았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번에 만났던 S라는 드라이버가 나에게 '말라위는 폴 콰가메 (르완다 대통령, 철권통치와 개발독재 스타일의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같은 사람이 필요해'라고 말해서 이걸 A에게 말해주었더니, A는 말라위와 르완다를 그렇게 일대일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 폴 콰가메의 배경을 봐야한다고 했다. 폴 콰가메는 우간다 독재자 무세비니가 처음 전쟁을 시작할 때 망명 상태에서 intelligence 요원으로, 거의 우간다 군대에서 경력을 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되어 철권통치를 시작했고, 어찌보면 자기 자신을 아프리카의 박정희로 네이밍 하여 나라의 개발을 끌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히 르완대 대학살 이 후), 독립 후 큰 전쟁이나 내홍을 겪지 않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살아온 말라위와는 맥락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의 중국도 이야기 했다. 우선 나와 A는 아프리카에서의 안티차이나 슬로건이 사실 미국와 유럽의 프로파간다인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동의했고, 그러면서도 차이나머니는 굉장히 조심해야할 것이라는 점에도 동의했다. 내 의견은, 중국이 지금 아프리카에 팔고 있는 건, 바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가 더 우월하다'는 아이디어라는 거였다. 모두가 중국이 이 대륙에 거대 인프라 투자를 하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사회기반시설을 중국인들을 데려다가 짓고 있는 경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데, 사실 중국이 아프리카 리더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너네, 민주주의 하고 있잖아. 그거 경제성장에는 쥐약이지? 권위주의가 더 나아. 중국을 봐.' 이거다.

 

  식민지배 이후, 독립을 하고도 역사적, 그리고 구조적으로 착취의 하단에 위치한 이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들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으로 더 깊이 구조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선진국들에서는 양적완화로 돈을 찍어 자산버블잔치와 더불어 엄청난 기술적 변혁,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가는데,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아직도 거버넌스가 문제다. 미국과 유럽에서 국제 규범 전파를 하면서  또 loan project 등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끼워 팔아서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했는데, 실상은 해결되지 않은 권력의 부패와 해묵은 이슈들 (해결되지 않은 종족 갈등, 자원 배분 문제 등등)로 민주주의의 절차로 선출된 리더들이 제대로 국가의 개발과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현재 인플레와 높은 실업률으로 고통받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우리 차라리 유능한 독재자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심정적으로는 무리가 아닐 수가 있고, 이런 심정이 아프리카의 이 젊은 심장들에게 퍼지고 있다면.. 중국의 메시지도 먹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구 A와의 지적인 대화는 역시나 종교와 믿음에 대해 논의하다가 끝이 났다. 한참 비가 오는 카페 정원을 보고 와인 한 잔씩 마시면서 이런 생업에는 도움 하나도 안 되는 지적인 수다를 떨고 나니 거의 저녁시간이 되어 이만 파하기로 한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쳔인 그와 종교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한국의 교회에 대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해주면서, 뭐랄까, 이 부분은 답을 찾기 보다는 결국은 계속 물음표가 남는 주제였던 것 같다. 나는 목적의식을 가진 신, 목적성을 가진 세계를 믿기에는 아직 경험과 확신이, 혹은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인과 혹은 규칙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목적성 없는 세계관에 익숙하여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작년 개인적인 아이덴티티 위기를 겪으며 내가 그냥 어떤 큰 믿음 체계에 푹 담겨, 신에게, 나를 도와줄 누군가를 그냥 믿고 맡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한 건 사실이다. 

 

  또한 내가 삶에서 끊임 없이 생명력을 얻고, 성장을 추구하고, 호기심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과연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가도 생각해본다.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은 종교를 가진 이들이고, 그들에게 가장 큰 모티베이션은 바로 신이다. 그 신이 어떤 형태와 이름을 가졌든간에, 개념적인 부분에서 그렇다. 나는 이 맥락에서 불가지론자에 가까운데.. 불가지론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은 그렇다면 어디에서 목적의식과 에너지를 얻는 것일까? 이 세계가 우연에 의지하여 목적성 없이 진행된다고 믿는다면, 과연 진보를 추구하거나, 개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30년이 넘는 내 인생을 정말 열심히 성장하고, 나의 개인적 수준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번 해는 그냥 심플라이프를 살고, 마음의 평화를 1순위로 삼고 살자고 했는데 연초부터 이렇게 지적인 대화를 하게 되어 쓸데없는 잡 생각이 또 많아졌다. 내일은 그냥 흠뻑 땀흘리며 운동하러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