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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에 대하여

뭔가를 송두리째 상실하는 경험에 대하여

by 주말의늦잠 2022. 1. 1.

  이 블로그에서 손을 뗀 시간이 꽤 오래 되는 만큼, 그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코로나19를 겪으며 더 많은 삶의 출렁임을 느낀 이들도 훨씬 많을테지만..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도는 상대적인 것이다. 누군가가 봤을 때 '에게.. 뭐 저런 걸로 우울해해?', '뭐 죽을 일도 아닌데...' 하는 상황도 그 개인에게는 삶에서 시계추의 끈이 툭 떨어지는 것처럼 큰 상실과 충격의 순간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에게 지난 2021년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방정식이 산산히 부서지고, 그리고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한 한 해였다. 내가 30대, 40대, 50대를 넘어서까지도 당연히 가져가고 부드럽게 우상향할 거라 생각했던 삶의 특정한 부분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내가 있던 국가에서 쿠데타가 터져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도중에 겪은 일이라, 이 때는 정말 솔직히 말하면 일이고 뭐고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국제기구? 커리어 개발? 이런 것들이 다 허상으로 보였고, 아무 가치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10대부터 굉장히 목표지향적이고 커리어와 나의 성장을 큰 가치로 둔 닝겐이었기에, 이런 가치의 급격한 전환 (Drastic reversal of values that I have cherished for my entire life)에 나 스스로가 나에게 놀란 것 같기도 하다. 상황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후회했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슬픔과 우울감의 감정으로 과거를 되새김질하고, 제발 나에게 다시 돌아와달라고 마음 속에서 피터지게 기도했다.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불교심리학 책과 이별과 상실을 수습하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유튜브 영상을 매일 찾아보면서 미국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에 대해 알게되었다. 이는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인지하기 까지의 과정을 스키마틱하게 5단계로 정리한 것인데, 나는 이를 상실의 5단계로 변환해서 읽었고 어쩌면 내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느낄 때 마다 이 5단계의 그림 속에서 나를 위치시켜봤던 것 같다.

 

  이 5단계는 부정 (Denial) - 분노 (Anger) - 협상 (Bargaining) - 우울 (Depression) - 수용 (Acceptance)의 단계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 5단계는 직선적으로 순서대로 겪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2, 3, 4 단계를 한 번에 경험하기도 하고, 5단계의 감정을 느끼다가도 갑자기 1단계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계열을 조금 더 멀리 보면 결국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실이라는 이벤트를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마지막 단계까지 서서히 중심추는 이동한 것 같다. 각 단계에서 내가 주요하게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메시지들.

 

  • 부정 (Denial):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이런 일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이 단계에서 나는 옛 90년대 이별노래의 가사처럼, 비가 오면 비가오는 대로, 꽃이 피고 지면 또 그런대로 모든 것에 감정을 이입해서 내가 처한 상황을 과대해석했다. 
  • 분노 (Anger):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그럼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을 그냥 버리자는 거야 이렇게?" 이 단계에서 분노는 사실 후회라는 다른 얼굴을 가지고 나타난다. 상실의 경험 앞에서 끝없이 과거를 들추어내고, 잊어버린 줄 알았던 순간들이 플래시백으로 돌아와 내가 이랬다면.. 내가 저랬다면.. 하며 회환과 분노가 섞여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다.
  • 협상 (Bargaining): "내가 A, B, C 한다고 하면 이 상황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D를 포기할게 제발" 이 단계에서는 솔직히 말하면, 협상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계속 시도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시도한 이유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내가 이정도까지 내려놓고, 이 정도를 포기하겠다고 협상해봤지만 안 됐다는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 우울 (Depression): "나는 아마 다시는 제대로 된 사람은 못 만날거야",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 살았지?" 상실로 인한 우울감은 사실 그냥 항상 마음속 공기 어딘가에 떠있는 기본 감정이다. 나는 우울하고 외롭다는 극한의 감정을 경험하면서, 우울하다는 건 자존감이 매일매일 깎아내려가는 과정이라 느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졌던 자신감, 신뢰, 어딜 가서든 해낼 수 있고, 어떤 것이든 이겨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앞으로는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그런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마음 속 우울 몬스터에 의해 매일 박살나는 거다.
  • 수용 (Acceptance): "이건 누구나 겪는 일이야",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사라진 건 맞지만, 아직 가진게 많고 그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해" 이 부분에서 불교심리학과 불교이론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분명 이 전에 사건들이 촉발되었기 때문이라는 인과이론, 내가 가지고 있었던 굳은 믿음들이 허상임을 깨닫는 것, 인간의 마음의 작동원리를 배우고 내가 지나고 있는 이 감정의 터널의 뿌리를 직시하는 것...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어쨋든 수 개월의 힘든 시간 끝에 내 감정의 추는 조금씩 수용 단계로 움직여간다. 

 

  내가 이 상실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한 인간에게 상실과 죽음이라는 경험은 가지고 있던 삶과 믿음 모든 것이 어딘가로 툭, 추락해버리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중대한 사건 앞에서 나는 슬프고,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다른 부분은 여전히 긍정과 감사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주변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환경이 있었고, 여전히 인정받으며 일을 해나갔으며, 그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 가진게 많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있어서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정말 행복했고, 내가 행복한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열망을 가지고 내 일과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에 감사하고,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들이 내 인생을 장식했다는 것에 올해도, 내년도, 그리고 평생 감사할 것이다. 인스타 피드에서 잘 모르지만 팔로우를 맺은 한 분이 적은 글귀에, 마음이 움직였고, 마치 내가 하는 말 같았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어젯밤 꿈은 너무 선명해서 깨어나서 한참을 그대로 있었어. 아프지 말고 늘 행복했으면.

전하지 못하지만, 해피 뉴 이어."

 

 

- 202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