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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오후/영화, 매체

[영화] 마션과 그래비티

by 주말의늦잠 2015. 11. 1.




우주에서, 우리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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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온화한 집단 낙관주의



  어제 친구랑 '마션'을 보았다. 개봉일과 인기에 비해서는 좀 늦게 본 셈이다.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세간의 평이 영화를 잘 요약해주는 것 같다. 어쨋든 본론으로 들어가면, '마션'은 아주 친절한 영화다.SF영화 특히 과학을 토대로 둔 영화의 큰 고민 중 하나는 과연 영화적 설정을 관객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따라올 것인가의 여부다. 이런 점에서 마션은 인터스텔라보다 훨씬 친절했다. 특히 이과적 토대를 고등학교 때 부터 박탈당하고 산 나같은 문과인에게는, 뭐랄까 와트니가 매일 쓰는 영상일지나, 등장인물들이 대화하거나 회의할 때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설명해주는 영화의 '과학적 엄밀성에 대한 집착'이 난 고마웠다. 


  그리고 '마션'은 아주 낙관적이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 뿐 아니라, 휴스턴 나사 본부의 과학자들과 의사결정자들, 와트니를 위해 미션연장을 무릅쓰는 과학자 동료들. 파열음이 들리지 않는다. 의사결정 대립이라 해봤자 영화 전체라 보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가 와트니의 구조라는 그 미션을 향해 문제해결 고리를 함께 으쌰으쌰 뚫어가는 에너지로 무장해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낙관적이다. 절대 고립의 상황에서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인간. 이성, 과학 그리고 동료와 동료 인간들에 대한 믿음의 힘. 


  그래서 와트니의 낙관주의는 개인성 보다는 어떤 온화한 집단성에 근거한 것으로 느껴졌다. 동료 인간에 대한 믿음. 과학과 천재성과 운과 우연의 힘과 버무려져서 영화는 결국 해피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한다. 재미있었다. 사실 우리는 영화에서 악을 너무 기대하지는 않는가. 드라마 속의 전형적 질투의 화신이나, 관계를 흐뜨리는 모난 인물들, 스토리를 클라이맥스로 몰고가는 데 큰 영할을 하는 악인들. 혹은 악. 이런 것 없이도 충분히 재난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인간들이 협동하고, 서로 생각하고, 만장일치를 이루고, 한 인간을 위해 여러번 모험을 거는 이 극적인 드라마에서 그 누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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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아름다운 우주에서,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질문



  집에 와서 나는 갑자기 그래비티라는 영화가 보고싶어졌다. 사실 이 영화는 2-3년 전 2편 정도의 영화 평론을 읽고 꼭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잊혀졌었는데. 어제 기회가 되어 새벽 1시 반까지 어둠 속에서 그래비티를 숨죽이고 보았다. 사실 숨 죽였다기 보다는 닥터 스톤과 함께 거칠게 호흡했다고 하는 게 옳을려나. 그래비티는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마션과는 같은 장르이면서도, 뭐랄까, 아주 생경했다. 영화 초반에 등장인물 2명이 나오더니, 펑펑 우당탕 하더니 혼자 남는다. 혼자 남을 때 까지 그 어떤 휴먼 멜로 드라마도 끼지 않아서, 마치 처음부터 이 인물이 우주에 혼자 고립되게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이 세팅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 만큼, 그래비티에서 '고독', '혼자 있음'은 중요해 보인다.


  스톤은 지구로 돌아갈 이유가 별로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마치 와트니는 전 인류의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은 것 같지만, 스톤에게는 남편도 딸도 없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운전하면서 듣게 된 이후로 '습관적으로' 운전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녀가 우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침묵'이다. 실제로 우주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스톤은 우주에서 두 번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 처음 우주 파편에 맞아 나가 떨어진 후, 우주의 한 점으로 소멸하는 가 싶던 그 순간. '제발 누구라도... 자신에게 응답해주길 (Please, anyone, copy..). 그리고 소유즈에서 연료가 바닥났던 순간, 기압과 산소 레벨을 모두 꺼버리고 평온한 잠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이렇게 두 번. 그런데 저산소 상태의 환각에서 만난 동료 조지 클루니와 만난 후 그녀는 180도 변한다. 지구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래비티'로의 귀화에 진짜 '목숨을 걸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우주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가. 광활한 우주에서 아름다운 지구를 보며, 3인칭과 1인칭을 드나드는 화려한 비디오 테크닉 덕분에 마치 내가 닥터 스톤을 겪고 나온 것 같은 그 경험. 마치 우주가 어머니의 자궁 속이 아닌가, 할 정도로 영화 정체에 흩뿌려진 '잉태'와 '착상', '탄생'의 상징들. 우주의 아름다움과 웅장미 앞에서 결국 인간의 삶과, 삶이라는 그래비티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이야기 하는 영화. 우주의 재난 서사 속,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정말 훌륭하고 아릅답게 질문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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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주의 환경을 이겨내는 낙관주의 과학자이든, 우주에서 재탄생의 상징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든. 



p.s. 마션의 과학적 엄밀성 고증을 훌륭하게 해 준 한 비디오 (Science versus Movie):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3&cad=rja&uact=8&ved=0CCcQtwIwAmoVChMIyfTptMnuyAIVoiCmCh2-bAvx&url=http%3A%2F%2Fwww.youtube.com%2Fwatch%3Fv%3DKCxQ3hYHrZk&usg=AFQjCNGBJWL0MRsw172FLNoeAGid7ePqjg&sig2=0iDdoBxR9D8rzUiRgxXW5g&bvm=bv.106379543,d.dGY